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했다.
playlist. Perfectly Out Of Place _ Dreams We's Had
예민하다는 건 불편한 것들이 여간 한 둘이 아니다.
일단 쉽게 피곤해지고 쉽게 지친다.
쉽게 재밌고, 쉽게 우울하다.
빠르게 불 타 올랐다가, 곧바로 차갑게 식기도 한다.
부탁도 못하면서 거절도 못한다.
난 무던 과 예민이 동시에 공존하는 사람인데, 예민은 비교적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내가 가진 예민은 사람들의 감정과 말과 행동에 기울었다. 타인이 하는 말들에, 그 말의 지엽적인 뜻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저의를 생각하게 된다.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라면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과 말들을 하는 이들을 보고 그 속 뜻이 궁금했다. 그런 성향 덕분에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의 첫걸음은 조심스러웠다. 특별하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던 이유는 상대의 감정에 있었다.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서 저 사람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그렇기에, 만일 내가 들었더라면 상처가 될 법한 말을 줄였다. 내가 이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단어를 선택했다. 눈빛을 선택했다. 발걸음의 속도를 선택했다. 그런 선택들을 하고 나니, 나는 타인에게 ‘고민 상담’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아 준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다. 나는 모든 고민의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나는 미완했고, 불완전했다. 고마웠던 이유는 그 말들이 타인에게 쉽사리 하기 힘든 말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말들을 내게 해준다는 건 나를 어느 정도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고마웠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수더분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아, 저 사람은 저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닐 거야. 아, 저 사람은 내게 상처 주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분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했다. 처음이라 어려웠다.
많은 이들이 무던하게 느끼려면 이상한 의미들을 부여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저들은 저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기분이 나쁜 건 그저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면 ‘아, 저들도 저런 말들을 했으니, 나도 저런 말들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나의 나약한 다짐을 변질시키려고 노력했다.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쉽게 울먹였고, 쉽게 웃었다.
이럴 때에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하는 생각들로 인해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민한 성격 탓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새로운 집단 속에서 얼마만큼의 나를 보여줘야 하는지 몰라서 두려웠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자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알아가고 싶으면서도 그들에게 보여줄 나를 생성해 내는 것들이 힘들었다.
‘난 그거 싫어. 근데 내가 싫어해서 네가 날 싫어할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MBTI 같은 나름의 획일화된 성격유형들은 내게 조금은 편리함을 주었다. 타인의 성향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면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에 의도나 저의를 어렴풋이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알고 나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미숙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들의 성격 유형을 물었다. 그리고 혼자 그 유형에 대해서 공부했다. 아, 이런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귀여운 것들을 사랑하는구나. 다정한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예의 없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혼자 좋아하다가도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 나오면 혼자 슬퍼했다. 그렇게 혼자 기뻐하면서도 혼자 실망했다. 그렇게 혼자 계산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결국 내게 다가오는 건, 그들과의 거리감이었다. ‘역시 나와는 친해질 수 없어.’ 하는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미시감이었다.
“너무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마.”
형이 내게 말했다. “그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거야.”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 편이 덜 후회한다는 거다. 후회라는 걸 달고 살았다. 후회라는 감정과 그리 지겹도록 만났어도, 우리는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후회라고 하니 몇 해 전 홀로 부산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새벽 두 시, 홀로 엘리베이터 안에 14층에 갇혔다. 말하자면 길지만, 나는 그때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덜컹 - 하며 지면이 흔들려 넘어졌던 그 공간과 죽음 앞에 선 심장 떨림은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고백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사랑해. 진심으로. 사랑해.’
쉽게 상처를 받고 쉽게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아픈 것들 덕분에 예쁜 것들을 조금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게 상처를 주는 것들을 사랑하기는 쉽지는 않았다. 그저 상처받는 나 자신을 외면하지 말아야지 생각한 거다. 상처를 받는 나 자신과 온전한 고통을 받고 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말 소멸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금 더 구애받던 상처를 허물어야겠다.
그렇게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사랑해야겠다.
그렇게 조금 더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해야겠다.
그렇게 조금 더 덧없는 낭만을 가지겠다.
그렇게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