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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령 Jul 31. 2023

Chapter2. 계절

여름

일렁이는 푸른빛, 얼음 가득한 믹스커피, 선풍기 앞에서 아- 하며 듣는 사오정 소리, 물컵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헐렁한 반팔과 반바지, 매미소리 가득한 아파트, 놀이터 웃음소리, 담벼락에 장미, 수영장과 수영복, 그 안에서 두근거리는 나.


 아주 더운 여름, 회사 근처에서 진행하는 명상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급하게 신청해서 주제도 모르는 채로 수업에 들어갔는데 주제가 절기 -24 절기 할 때 그 절기- 였고, 당시에 해당하는 대서와 입추 사이를 다루었다. 농사력(農事曆)인 절기에 따르면 이때엔 '김매기'를 한다고 한다. 김매기는 한창 자라나는 벼 사이 잡초를 뽑는 일인데, 선생님은 사람도 여름엔 김매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초에 계획한 일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여름 즈음에 잘 해내겠다는 마음 사이사이 조급함, 과한 욕심, 무기력등의 방해되는 감정들을 속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겨울에 괜찮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단다. 어쩌면 나는 매년 김매기를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물에 살았나 싶은 나는 물멍을 참 좋아해서 퇴근 후엔 한강, 시간이 날 땐 바다를 보러 떠났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비워야 할 때 그것만큼 좋은 처방이 없었다. 그러니 여름에 바다를 찾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바다는 아름다운 장소이기도 하지만 붙들고 있던 감정을 던지기 제격이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부정적 감정들을 뽑아 바다에 던져댄 나는 김매기 장인이 되어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구나 깨달았다. 바다에 짐을 내려놓은 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긴 여름의 날들은 반짝거리는 날씨와 시원한 먹을거리로 가득 찬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이것이 내가 여름을 사랑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누구든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 당신만의 김매기 방법을 찾아 반짝이는 여름을 만들기 바란다. 그러다 바람이 약간 선선해져 가을이 느껴지면 '아, 괜찮은 여름이었다.'하고 속삭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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