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스님, 룸비니 그리고 집
쇠북 소리가 울립니다. 새벽 예불 시간입니다.
룸비니의 하루는 다른 곳보다 유난히 일찍 시작합니다.
지난밤 만났던
노부부, 경호형과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의 불경 읊는 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 외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군요.
정말 고요합니다.
계속해서 절을 올리시는 분도 계시고,
가만히 명상을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고리타분한 예불이 아닐까 했는데..
모두들 각자의 방법대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예불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매우 건강해질 거 같은 시간표입니다.
이곳 사원구역에서는 바깥 음식 먹기가 어렵습니다.
가게도 거의 없어 군것질하기도 어렵고요.
그러므로 공양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설거지도 잘해야 하고요.
예불드리고, 공양시간 맞추어 식사하고
스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한국에서 온 수행자들과 이야기도 나누어봅니다.
인도, 델리에 가거든 이렇게 하라며
델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신 스님도 계셨습니다.
(*룸비니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3주가 지난 뒤
인도 바라나시에서 스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라씨를 한 잔 사주시더군요, 돌고 도는 인연입니다.)
룸비니에서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참 조금 특별한 것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절에서 함께 머물고 있는 경호형.
경호형은 집이 있는 덴마크를 떠나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출가를 한 것이지요.
여러 나라를 돌아 네팔 남쪽까지 오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만났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함께 돌아다니며
전 세계의 절 구경을 하고,
예불을 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했어요.
경호형은 한국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덴마크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죠.
사실 경호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답니다.
경호형이 사용하는 이름은 '제이콥' 이거든요,
(한국 이름을 물어보니 '경호' 라고 알려주더군요.)
경호형은 아주 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을 갔답니다.
한국 부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답니다.
경호형은 2024년 여름 한국을 방문해
부모님을 찾을 계획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보면 무슨 말을 먼저 하고 싶은지 물었어요.
“왜 나를 버리셨나요”
라고 말할 거라고 하더군요.
무례한 질문을 한 거 같았어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라
쉽게 생각을 한 거 같았죠.
그러니, 잠시 후 경호형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농담이고, 그저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힘든데요.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걸어 다니고, 절 구경 다니고,
원숭이들도 보러 다니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어요.
잘못된 맛의 아이크스림이었습니다.
다시 저희가 머무는 한국 절
대성석가사로 돌아와서
빨래도 하고, 낮잠도 한숨 자봅니다.
다시 시간표에 맞추어 저녁을 먹고
예불도 드리구요.
저녁예불이 끝이 나면
최첨단 보일러 시스템으로 데워진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합니다.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가던 룸비니
이제 룸비니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고요한 대성석가사.
아무도 없는 방에서 다시 배낭을 꾸려보아요.
*경호형은 2024년 여름 한국을 방문하여
짧은 휴가를 보냈습니다.
광장시장에서 같이 빈대떡을 먹었죠.
유전자 검사를 했고
제주도에 계신 삼촌을 한 분 찾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의 일들은 더 물어보지 않았어요.
내년에 한국에 다시 올 거라고 했는데,
다시 만나서 꼭 좋은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경호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