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티지 못했다#7

7일차

by 세보

인턴 생활 7일 차

오늘도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출근 후 바라본 모니터 속의 세상은 0과 1로 이루어진 값이 떨어지는 세계여야 했다. 나는 엑셀안에 가득 채워진 기획안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분주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출퇴근 QR 코드의 생성 방식, GPS의 좌표 , 챗봇 등 많은 주요기능들이 1차 2차 개발에 맞춰 나올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했다. 이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단 하나의 오류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인턴을 하면서 내가 일을 잘한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곧 벽에 부딪혔다.

“대리님, 출퇴근 시 GPS는 2차 때 개발인가요? 문의하기 챗봇도 지금 구현되는 건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마치 미리 녹음된 자동 응답기 같았다.

“그건 2차 개발이에요. 일단 놔두세요.”

“그것도 2차요.”

“아직 화면 없어요. 나중에.”

"제가 그리고 지금 바뻐서 나중에 한꺼번에 물어보세요."


나는 1차, 2차 개발에 맞게 알림시나리오를 기획해야 했고 명확하게 나눠진게 없었어서 어떤 기능에 대해 시나리오를 짜야될 지 아니면 일단 전체적으로 알림시나리오를 전부 기획을 해야될지 혼동이 왔다. 나는 짓다 만 건물 안에서 창문의 위치를 고민하는 설계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기획은 정말 쓸모가 있는 걸까?"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서 선택한건가?"

"원래 기업에서 일하는게 이런건가?"


원래도 고민과 걱정이 많은 성격인데 혹시라도 일을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거 같아서 불안했다.

스크롤을 내리며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도 이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그저 처리되기를 기다리는 데이터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나의 질문은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다. ‘나중’이라는 말은 가능성을 남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해당 MVP 기능 리마인드 필요 없음. 팝업 추가. 수정 제외.’

기계적인 메모들을 정리하며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의 열정도, 완벽하게 업무수행을 향한 질문들도 이곳에서는 ‘2차 개발’로 미루어질 수조차 없는 불필요한 기능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퇴사는 시스템이 허락한 기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 밖의 진짜 세상에서는 승인도, 팝업도 필요 없다. 누군가 띄워주는 창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다음 페이지로 넘길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싶다.


하지만 그 결정 역시 한동안은 미뤄질 것이다. 나는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나의 대답도, 나의 용기도 또 다른 ‘나중’으로 밀려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다. 최소한 '퇴사'라는 그 대답만큼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클릭에 맡기지 않고 내가 결정하겠다는 다짐말이다.


나중으로 미루어진 질문들 사이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응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시간을 기점으로 나는 확실하게 '퇴사'를 마음먹었다. 반복되는 업무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나는 왜 버티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비교하며 매번 자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않는다. '퇴사'를 마음먹고 사수님에게 말하는 거 조차 두렵다. 입사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않았는데 어떻게 말해야될지 고민만하다가 또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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