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티지 못했다#6

6일차

by 세보

인턴 6일차

첫 외근을 다녀온 이후, 나는 또렷한 성취감대신 묘한 어지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사수님은 나에게 새로운 업무를 주었다. “알림 관련 기능 명세서 작성해야 돼요. 이번 첫 외근에서 어느 정도 내용 들으셨을 테니 이 업무 해보세요!” 그 말은 간단했지만, 그 뒤에 일어날 일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나는 ‘알림’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이렇게 많은 가지를 뻗고 있을 줄 미처 몰랐다. 회원가입 인증 알림, 근로자 가입 초대 알림, 근로계약서 서명 요청 알림, 연차 승인 안내, 스케줄 변경 안내, 근태 초과 근무 요약 안내 등 알림 시나리오가 '끝이 없는 숲'처럼 펼쳐져 있었다.

알림 도구도 SMS, 푸시, 알림창, e-mail 등4가지 이상이었고 조건을 작성할 때도 시나리오명, 발동 조건, 관련 경로, 노출 문구, 기타사항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이 모든 요소를 엮어 하나의 '시나리오'로 정리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복잡함이 그저 낯설 뿐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라고, 차근차근 이해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알림 시나리오 작업은 나를 더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면, 그 뒤에서 또 다른상황까지 고려해야했다. 예시로 이메일로 회원가입하는 사람에게는 이메일과 팝업만으로만 알림이 떠야 되고 휴대폰으로 회원가입하는 사람은 휴대폰과 팝업으로만 알림 시나리오가 뜨는 상황이다. 즉 이메일로 가입한 사람의 알림 시나리오와 휴대폰으로 가입한 사람의 알림 시나리오를 각각 상황에 고려하여 케이스들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조건에 영향을 받는 예외 사항도 있었다. 하나의 흐름을 정리하면, 또 다른 흐름이 그것과 충돌했다.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알림 시나리오 미로‘속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푸시 알림과 SMS의 문구 차이를 고민했고 어떤 알림이 근로자에게만 가는지, 어떤 조건에서 발동하는지, 사업주는 어떤 경우에 인증이 필요 없는지를 적었다 지웠다 반복했다.

이러한 업무 과정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일…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내가 진짜 디자이너를 원하고 있는 건가?"와 같은..


인턴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배우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배우기 위해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맞지 않는 세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디자인을 좋아해서 인턴을 지원했지만 내가 생각하던 디자이너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니면 "현재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적응을 못하는 것인가?" 또는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세계라고 느끼는 것일까?" 등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또한, 매일 아침 자리에 앉을 때마다 나를 감싸던 건 긴장과 압박감이었다. 다른 동기는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갔지만, 나는 매번 알림 시나리오의 조건 하나, 문구 하나에도 숨이 찼다.

결정적인 날, 나는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일을 계속하면서 성장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솔직한 질문이 떠올랐다.
“여기서 버티는 것이 나를 위한 선택일까?”

나는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퇴사해야겠다."라고...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겨우 일주일 하고 퇴사를 한다고?"

"거기서도 못 버티면 다른 곳에서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등...


하지만 이 업무를 하면서 현재 나의 부족함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왜 기업들이 완성형 인재를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인턴으로 입사하면 배우는 기간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가령 OJT 같은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채용 시장은 중고신입들을 더 선호하고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는 사람들을 원한다. 업무에 부딪히며 느낀 점이지만 실력이 부족하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업무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었다. 나는 퇴근을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속상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적어도 한 달은 해봐야 내가 이 업무에 적합한지를 알 수 있을거 같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 잡고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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