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스퀘어브릿지 해커톤 디자이너 면접 - 명동
우리는 모두 진열대 위에 올라가 있다. 스펙이라는 포장지로 감싸고, 자소서라는 라벨을 붙인 채, 면접관이라는 손님의 선택을 기다린다. 유통기한은 '신입'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동안만 유효하다.
나 역시 꽤 괜찮은 상품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UI/UX 디자인인턴 경험이라는 기능을 탑재했고 여러 대외활동이라는 옵션도 추가했다. 하지만 시장의 논리는 냉정했다. 어떤 손님은 포장지만 쓱 훑어보고 대충 면접을 보고, 어떤 손님은 제품의 기능보다 엉뚱한 사양을 요구했다.
팔리기 위해 안달 났던 시간들. 그러나 거절당하고 외면받는 과정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팔리지 않는 나만의 가치'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를 팔러 갔다가 도리어 나를 되찾아 돌아온 실패의 기록이자 성장의 기록이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7시였다. 창밖은 이미 밝았지만, 내 머릿속은 어젯밤 되뇌었던 예상 질문들과 답변으로 가득했다.
오늘은 바로 '신한 스퀘어브릿지 해커톤 2기', UI/UX 디자인 파트 면접일이다.
명동까지 가기 위해 몸을 실은 출근길 지하철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빽빽한 사람들 틈에 끼어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콩나물시루 속. 누군가의 가방에 치이고 사람들의 팔꿈치에 떠밀리며 나는 생각했다.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다들 살기위해 출근길을 가는구나.' 출근길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쟁취하기 위해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처럼 비장했다. 어제 새벽까지 인터넷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던 면접 후기 때문에 불안감은 더 컸다. 정보가 없다는 건 맨몸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오전 9시 30분, 면접 대기 장소에 도착했다. 명동의 활기찬 아침 공기와는 다르게 대기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출석 체크를 위해 놓인 종이 위에는 이미 10명, 아니 20명 남짓한 이름들이 빼곡했다. 저 이름들 하나하나가 나와 경쟁할 상대라고 생각하니 목이 탔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준비해온 문서를 보았다. 자기소개, 지원동기, 예상 질문 리스트... 달달 외우다시피 한 문장들이었지만, 입술은 파르르 거리며 떨었다. '이 질문이 나오면 이 프로젝트를 강조해야지. 저 질문에는 나의 열정을 보여줘야 해.' 정보가 없어서 막막했던 만큼 나는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면접관이 원할 것 같은 '완벽한 나'를 조립하고 있었다.
면접시간인 10시가 되니 운영진분들이 대기인원들 중 조를 묶어서 3~4명씩 호명했다. 몇분 뒤,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 포함 3명이 결전의 장소로 들어갔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지만 최대한 긴장하지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이전에 경험했던 '신한 커리어업' 면접처럼 다대다 형식의 치열한 공방이 오갈 것이라 예상했다. 시간을 들여 나를 검증하고, 압박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그런 긴 시간을 각오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장 자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그게 전부였다. 나는 여태까지 면접을 보면 자기소개때 매번 포트폴리오에 없는 경험을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포트폴리오에 녹여낸 프로젝트로만 1분자기소개를 했다. 이번 자기소개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음 질문인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세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밤새 갈고닦았던 수많은 예상 답변들, UI/UX디자인에 대한 나의 철학,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꺼내볼 틈도 없었다.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아서였을까. 면접관은 질문을 2개만 하고 마무리지었다. 문을 열고 다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다. 준비한 갑옷을 입고 칼을 뽑으려는데 이미 전쟁이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면접장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은 들어갈 때보다 더 무거웠다. 긴장이 풀려서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허무함 때문이었다. '겨우 이걸 보여주려고 어제 그토록 잠 못 이루며 나를 채찍질했나?'
면접관들은 그 짧은 10분 동안 나의 무엇을 보았을까. 나의 디자인 역량을 보았을까, 아니면 잘 준비된 '연기'를 보았을까. 문득 면접이라는 것이 결국 누가 더 그럴싸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꾸며내는지를 겨루는 연기 오디션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기준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나는 그 10분 동안 나를 증명하려 애썼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진짜 나'는 소거된 것 같았다.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길, 명동의 인파 속에서 나는 다시 평범한 한 사람이 되었다.
결과는 기다려봐야 알 것같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마주한 건 면접관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재단하려 했던 나 자신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을 통해 분명 무의식적으로 성장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