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팝니다, 가격은 '열정'입니다#2

딥테크 IT 스타트업 UIUX디자이너 면접 후기 - DDP

by 세보

마치 우주가 나를 돕는 것 같은 날이었다. 하루에 면접이 세 개나 잡히다니. 취업 한파 속에 찾아온 이 기적 같은 스케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이야말로 나의 날이다.' 그중 한 곳, 딥테크 기술을 다루는 IT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만 해도 내 발걸음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회사 면접관의 첫인상은 묘했다. 회사 소개와 자기소개, 지원 동기까지는 여느 면접과 다르지 않았다. "본인이 하신 프로젝트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홈페이지는 보고 왔느냐"는 질문에 나는 준비한 대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면접관의 질문은 내 '직무'가 아닌 '기능'과 '성향'을 찔러오기 시작했다.


"담배 피우나요?" "운전은 가능합니까?" "술은 잘 마시는 편인가요?"


디자이너를 뽑는 자리에서 왜 운전과 주량이 필요한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스타트업이니까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겠지' 하며 넘겼다. 하지만 이어진 질문들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약점만 골라 파고들었다.


"비전공자이신데 이 직무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전 인턴에서 정규직 전환은 왜 안 된 거죠?" "자기소개, 이거 얼마나 연습해서 온 겁니까?"


마치 내가 감추고 싶었던 치부만을 들춰내는 듯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나도 모르게 솔직해져 버렸다. 심지어 자기소개서에서도 직무상 약점을 작성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말했다. "비즈니스 성과를 낸 프로젝트 경험이 부족해서..." 이 부분을 내 입으로 내 약점을 시인하는 순간 면접관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아, 말하지 말 걸.'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면접관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아이디어는 많을 것 같네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도 다 다루고." 칭찬인지, 그저 손발이 빠른 작업자가 필요하다는 뜻인지 헷갈릴 무렵, 대화는 결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디자인 팀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사수 분이 계신가요?"

돌아온 대답은 내 기대를 와장창 깨뜨렸다. 사수는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신입인 내가 들어와서, 아무런 가이드 없이 부딪히며 헤쳐나가야 했다. 사실상 '디자인 리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합니까?"

그 질문은 어투를 보았을 때 합격 시그널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한 질문인 것 같다.


면접장을 나오는 길,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드라니. 사수도 없이 맨땅에 헤딩이라니.' 신입으로서 열정은 있었지만, 아무런 지도 없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기회가 아니라 늪처럼 느껴졌다. 나의 부족한 비즈니스 감각을 채워주고 이끌어줄 멘토가 없는 곳에서 운전과 술자리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나는 소모될 것이 뻔했다.


하루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중 어떤 기회는 독이 든 성배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 배우고 싶다. 혼자서 모든 파도를 막아내는 방파제가 아니라 항해술을 배우는 선원이 되고 싶다.'


비록 내 약점을 들켰고 아쉬움이 남는 면접이었지만, 나는 면접자리를 나오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합격 전화를 기다리기보다 거절할 용기를 미리 챙겨 둔 채 나는 다음 면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참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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