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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in Jun 27. 2024

[KR-Seoul] 중요한 일에만 마음을 담아

 

사람에 대한 기대(anticipation)는 여지없이 실망으로 이어지듯.

가까운 사람에 대해 한없이 乙 입장을 자처하는 내 삶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요즘.

무엇으로 나의 이 가라앉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를 찾는다.


걷기, 운동하기, 기도하기, 그리고 책 읽기.


생각해 보니, 나의 독서는 그 무엇도 없던 어두컴컴한 나의 20대 구석진 한편에서 멈춰있었다.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워킹맘의 일상을 핑계로, 사실 나는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샌디에이고를 많이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양재천의 숲길은 아름답고, 

그 길 끝에 자리 잡은 양재도서관은 엔시니타스의 바다도서관을 잊을 만큼 아름답고 싱그럽다. 

그저 숲길과 도서관이 좋을 뿐인데, 자두 들락날락하다 보니 예전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얼마 전에 정약용을 만났다. 어릴 때는 그저 실학자 정도로만 기억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만난 그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이 나이쯤 되니,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더 대단하다 싶고, 내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게 된다.


그의 다음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삶에 대한 통찰이 예사롭지가 않다. 


"세상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시비(是非)와 이해(利害)가 그것이다.

 옭은 것을 지켜 이롭게 되는 것이 가장 좋고, 옭은 일을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른 일을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 세 번째고, 그런 일을 하다가 해를 보는 것은 네 번째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를 하려다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정민의 다산독본-파란(波瀾) 중에서-




실은 참으로 모든 게 좋았다. 새로 다닌 직장의 처우도 좋고, 일에 보람도 느끼고 사람들도 좋다.

어쩌면 이렇게 일하는 것이 '옳은 일을 함으로써 이롭게 되는' 가장 좋은 길일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맘에 드는 상황은 오히려 불안하다.

그 불안함을 내려놓고, 좀 더 J와 H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부모는 자녀가 다 커서는 아무런 도움도 의지도 되지 않지만(되어서도 안되지만)

아직 다 크지 않은 시점에서는 부모만큼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 그 마음을 매일매일 하나하나 살피고 더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참으로 아쉽다.

그 시절로 가끔씩 돌아가고 싶다. 돌아간다면 아이들의 눈을 더 깊이 바라보고, 아이들이 종알거리는 말에 더 귀 기울이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순간순간을 더 마음에 새겼을 텐데.

(솔이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래서 어리석은 과거의 내가 놓쳤던 수많은 순간을 헤아릴 수 있다면)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휘몰아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만,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앞으로는 정말로 중요한 일에만 마음을 담아.

비 온 뒤 숲 속에서 마주치는 클로버 꽃,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이런 클로버 꽃을 마주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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