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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Aug 01.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8

 겹겹이 덮고 잔 덕분인지 숙소의 여건에 비해서는 숙면을 취한 듯하다. 중간에 화장실을 한번 가기 위해 방을 나설 때는 고난이었지만.


 4시간 남짓 걸으면 다음 목적지인 쏘롱페디에 도착한다는 크리슈나의 말에 오늘은 1시간 늦은 9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 역시 기온은 매우 낮은 편이라 손을 씻을 때는 손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 물티슈로 몸을 훔치고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아침을 마늘수프와 계란으로 때웠다. 내 옆자리엔 독일인 트랙커 두 명이 앉아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이런저런 독일과 관련된 주제의 얘기를 던졌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사태라던지, 독일밴드인 람슈테인에 대해 얘기했는데 왠걸 람슈테인의 보컬이 지인의 동생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내가 호기심있게 반응하자 그는 람슈테인의 보컬 틸 린데만은 무대 퍼포먼스는 과격하지만 사실은 매우 사색적이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행지 트랙커들과의 격조 없는 편안한 대화 역시 여행의 묘미.


고도적응 후 풍경은 더 편안히 눈에 담긴다.


 숙소에서 패킹을 마친 뒤 다시 출발. 어제 만끽하며 걸어간 고지대 특유의 황량한 모습을 뒤로하고  오르막을 계속 올라챈다. 중간중간에 한 두 채의 작은 집이 모인 곳들이 있었지만 누가 여기 살까 싶은 곳들이다. 그야말로 대자연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가야 되는 수준. 확실히 어제에 비해서 숨이 많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자주 크리슈나에게 자주 휴식을 요청하며 돌무더기에 앉아 쉬어간다.




 능숙한 트랙커들의 공통점은 짐이 적다는 것이다. 아침에 레스토랑에서 얘기한 독일트랙커 중 한 명은 무려 5년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단지 25리터짜리 작은 백팩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스틱으로는 길 가다가 구해지는 나무작대기를 사용하고 가장 두꺼운 겉옷이라고 해봐야 약간 두께감이 있는 목폴라후리스가 전부였다. 그는 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불평 섞인 말을 했지만 그의 세 배에 가까운 짐을 가진 나 역시 추위에 잠고생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도 처음에는 짐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필요 없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고. 이후 트랙킹에서 코스를 이탈해 옆의 호숫가로 내려가는 그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본인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 앉아 명상을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히말라야 트레킹 고수.


4000미터 이상의 지역을 가벼운 복장으로 지나는 고랩 트랙커


풍경에 취해 걸어가지만 힘이 안 드는 건 아니다. 산소농도를 운운하기엔 유난스럽지만 그만큼 숨이 빨리 차오른다. 두 시간 여 걸어가면 강을 건너기위해 갈림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신식다리가 설치된 길이고 한쪽은 예전에 사용하던 길이라고 고한다. 신식다리길은 편하지만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옛날길을 택했다. 강을 건너 마지막 경사에서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고바위를 올라 채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과 파는 노점이 기다리고 있다. 사과를 몇 개 사서 함께 쉬는 이들과 나눠먹는다.


 트레킹의 재미있는 점은 한번 루트에서 만난 트랙커들은 가면서 계속 마주친다는 점이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거진 다 비슷비슷하게 걸어간단 뜻이다. 또한 이런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도 기이한 인연이니 스스럼없이 서로 반가워하는 인사와 대화를 나누게된다. 농담을 좋아하는 독일 트랙커는 옆에서 날아다니는 벌을 보며 몸체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다며 저게 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농을 친다.  


그야말로 발자들이 만들어낸 길.


 힘을 내어 한 시간을 더 걸으면 오늘의 목적지인 쏘롱페디가 나온다. 쏘롱페디의 입구 근처는 산사태가 자주 나는 곳이라 여기저기 주의표지판이 보인다. 크리슈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위쪽에는 산양 몇 마리가 보인다. 산양들이 움직이며 일으키는 작은 돌의 움직임이 산사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도착한 쏘롱페디는 루트의 하이라이트인 ‘쏘롱라패스’ 이전의 마지막 숙소로서 그 규모가 이전의 마을들의 숙소에 비해 크다. 컨디션조절을 위해 적당한 양의 치즈토스트와 계란프라이를 먹으며 이른 휴식을 취했다. 잠깐 눈이 내리는 관경도 볼수 있다. 창가에 앉아 음악과 함께 눈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새삼 감회로운 느낌. 보통 이렇게 산행이 짧은 날은 마을 주변을 돌아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포커와 다른 어떤 게임을 한다거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게 된다.




 여행의 짙은 낭만이라는 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특별한 순간, 예를 들면 남녀가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예정에 없었던 불꽃놀이가 그곳에 터진다면 낭만적인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는,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순간. 그런 순간이 낭만적인 것이지 않을까. 히말라야 트레킹은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전체가 낭만 덩어리다. 모든것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곳. 물론 여행들은 모두 특성이 있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여행, 문화적인 볼거리를 즐기는 여행 등... 그 중 히말라야 트레킹은 불편하고 어렵지만 아주 낭만적인 여행이다. 며칠씩 제대로 씻지 못해도, 추위에 떨면서 잠을 자도 이 경험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쉽게 얻어지는 것에는 짧은 생명력이 있기 마련이다. 힘들게 걸어 도착한 로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색에 잠기며 삶을 돌아보는 경험은 왜 이토록 많은 트레커가 이 길에 걸어가고 있는지 말해주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아울러 지구의 지붕 이곳 히말라야가 보여주는 풍경은, 지구상의 가장 척박한 또 아무런 생명체도 살아가기 어려운 해발 5000미터 이상의 고도가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은 여행 내내 따라오는 보너스다.


로지의 저녁은 자유로움 그 자체.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레스토랑은 가득 찼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트랙커들이 모였다. 홀로 여행을 하는 트랙커는 사실 잘 없다. 가족단위, 연인이 가장 많다. 외로움을 느낄 세도 없이 누군가 슬그머니 기타를 들고 온다. 튠을 맞추고 조심스레 한곡을 연주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기타를 연주할 줄 아는 주자들은 돌아가며 한곡씩 부른다. 해발 4500미터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즉석콘서트는 추위를 녹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9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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