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10
트랙킹의 클라이맥스를 지났단 해방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쏘롱라패스의 반대쪽인 쏘롱페디에 비해 묵티나트 쪽은 한결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나 고지를 넘어온 다리는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꽤 힘든 수준. 이른 아침에 크리슈나와 근처 사원을 구경하기 위해 만났다. 맑은 히말라야의 공기에 더해 맞는 아침의 빛은 너무나도 따사롭고 행복하다.
사원의 형태는 소에 관련된 조형요소가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힌두와 불교가 융합된 형태인듯한데 우리나라의 사찰처럼 건물의 각 용도가 나누어져 있다. 가공된 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한국의 사찰처럼 크게 짓지는 못해도 각 건물의 의미가 나누어진 사찰의 형태가 이렇게 먼 곳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물론 부처님의 탄생지이고 이곳에서 불교가 전파되어 나갔으니 이쪽이 더 원류에 가깝다.
사찰의 중심부에 있는 소머리 형상의 분수에서 물이 나오는 곳이 가장 규모가 컸다. 시찰을 중심으로 빙 둘러가며 108마리의 소 머리가 물을 쏟아냈다. 힌두즘에서 비롯된 분수로 보였다. 시간이 맞아 비구들이 염불을 외는 곳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경을 읊는데 혼을 다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몰입적이다.
이곳은 자원의 풍족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묵티나트는 네팔에서 사찰지로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건축 인프라는 아직 덜 발달된 까닭에 자칫 규모만을 생각하고 방문한다면 다소 의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팔리들이 다루는 종교의식은 내면적 요소를 중요시하고 있고 그 형태 속에는 깊은 정신적인 영역이 있다고 생각된다.
산책을 마친 후 레스토랑에서 크리슈나와 논의한 결과 오늘 한 번에 좀솜까지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중간 기점인 까끄베니에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지만, 좀솜에서 포카라로 가는 항공편의 경우 다소 불규칙하기 때문에 항공편이 문제가 생겨도 바로 대처할 수 있는 좀솜에 먼저 도착하자고 얘기가 되었다.
묵티나트에서 자르콧으로 내려오는 길은 오른편으로 어퍼무스탕 영역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길이다. 히말라야 특유의 황량함은 어디든지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주는 느낌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계곡을 기점으로 왜 무스탕 쪽으로는 수목이 자라지 않는가를 물어보니 온도차이 때문이라고. 뒤를 바라보니 묵티나트의 모습이 멀리 바라보였다.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까끄베니가 나온다. 까끄베니는 검은 강이라는 이름의 '칼리건 더키'라는 협곡을 끼고 형성된 작은 마을인데 이 강은 포카라로 향하는 중요한 수원 중 하나라고 했다. 까끄베니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선 협곡길 윈디벨리는 꽤 힘든 여정 중 하나. 메마른 강을 끼고 계속해서 좀솜 쪽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간혈적으로 불던 바람이 이곳에서 모여 매우 강한 바람을 만들어 정면으로 바람을 맞서며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황량한 계곡에서 바람을 맞서며 계속 걸어가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3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는데 건조한 기후와 토질 덕분에 중간중간에 모래바람이 생성되어 불어온다. 그 때문에 선글라스 없이는 걸어가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지나는 마을에서 다른 트랙커가 돌을 바닥에 던지며 부수고 있는 것을 보고 왜 그러냐 물으니 이곳은 오래전에 바다였던 곳이라 운이 좋으면 암모나이트 같은 화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나도 주변에 있는 돌을 몇 개 던져보았지만 꽝.
좀솜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바람은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한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로 히말라야의 구름은 오후부터 내려오고 윈디밸리의 바람은 맑은 날이 심하다고 크리슈나는 말한다. 좀솜은 그간의 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마을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었다. 수목이 꽤 많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 침낭을 안 써도 될 정도였다. 2700미터에 위치한 이 마을은 공항이 있기 때문에 꽤 많은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 은행, 관광, 호텔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마을의 크기도 관문인 베시사하르 이상의 크기다.
어제의 쏘롱라패스와 더불어 오늘도 꽤 장시간 이어진 트레킹으로 육체가 상당히 지쳐있다는 게 느껴졌다. 좀솜의 비행기 이륙시간은 날씨에 문제가 없을 시 7시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에 빠른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이 되어 석양이 지는 것을 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니 '틸리초 히말'이 해발 7000미터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며 석양빛에 샤워를 하고 있다. 한참을 쳐다보며 주홍빛 샤워가 끝나길 지켜본다. 꽤 척박했던 고산지대의 며칠을 지나 다시금 말해 소위 살만한 곳에 앉아 있으니 지나온 몇 일의 여정이 꿈같이 느껴진다. 한 달씩 트레킹을 하는 유럽트랙커들과 달리 나는 항공표에 따른 안정적인 여행일정을 맞추기 위해 보름을 못 채우고 안나푸르나를 떠나게 되었다. 금세 찾아온 저녁은 이전 며칠과 달리 포근하다. 포근함과 함께 밀려오는 것은 끝나가는 일정에 대한 아쉬움. 네팔의 교외는 꼭 우리 옛 시골과 닮은 부분이 있어 묘한 향수를 자아낸다. 나의 어릴 적 시골은 외할머니가 사셨던 거창이었는데 거창에서도 후미진 시골후방부락이었다. 그 시골집 툇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그렇게 끝이 없는 듯 평화로웠던 방학을 보냈던 그 감정이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이유는 환경적인 것 외에도 디지털이 주는 단편적인 정보들에서 어느 정도 반강제적으로 해방되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디톡스 현상체험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네팔에서 히말라야를 본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이곳의 저지대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쉬는 것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11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