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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챙이마더 Apr 13. 2022

5. 지극히 개인적인 내 아이의 양극성 장애

#양극성_장애 육아기  #양극성장애패턴

18년을 키워온 올챙이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용솟음치는 아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 덜렁거려서 잘 넘어지고 잘 다치는 아이, 언변이 뛰어난 아이, 가끔 느닷없이 괴성을 지르고,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고, 간혹 식구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과 말로 상처 주는 아이, 위험한 상황이나 절대적인 상황에도 멈춤이 되지 않아 문제를 만드는 아이, 그래도 내면은 착한 아이, 18년 키우는 동안 내게 늘 물음표를 떠올리게 했던 아이...

학교폭력에 장시간 노출되어온 올챙이는 학폭위까지 열어 가해자를 처벌하고 학교와 가정, 상담센터와 병원의 도움이 뒤따랐지만 마음에 깊게 자리한 상처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으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스스로를 자꾸 추락시켰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올챙이에게는 꿈이 있었다.

[아티스트]

아이의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장래희망란에 변함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주변에 아이돌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실용음악학원을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학원이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올챙이도 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다.

아이돌은 아무나 하나? 바람만 잔뜩 들어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라 치부하고 무시했다.

중학교 1학년 들어서 정작 본인은 아이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지하게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실용음악을...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기제가 있어서 학교에서 시험도 보지 않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준비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이 허용되었다.

한 동안 직업훈련 경험해본다며 빵과 쿠키를 만들어 오기도 하고 비누와 향수를 만들어 오기도 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 즈음 다른 건 적성에 안 맞는데 음악은 마냥 좋다고 했다. 특히 전자 음원을 믹스해 만들어 내는 미디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해 왔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느낀 '난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대목이 여기서도 튀어나온다.

단순하게 미디 작곡을 획일화된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뭔가 좀 더 전문화된 분에게 배우는 게 좋겠다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아는 분 아들이 전자기타를 전공하고 있는데 미디를 따로 배운다고 하기에 수소문해서 S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실제로 만나서 상담을 하다 보니 S선생님은 피아노 작곡 전문 선생님이시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 올챙이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선생님의 작업실을 오가며 미디 작곡과 피아노를 익혔다.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깎아내리며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 외에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음악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절대적이었다.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 그런 꿈이라도 갖고 있는 게 어디냐 하면서...

중학교 3학년이 되고 고등학교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쯤 올챙이는 '실용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연습실을 끊어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틀어박혀 버스가 끊길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올챙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는 워낙 유명한 학교이기도 했을뿐더러 피아노 작곡으로 선별하는 인원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아서 사실 합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원서 작성을 위해 만난 담임선생은 "어머니 이 학교가 얼마나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인지 잘 아시죠? 작년에 올챙이보다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학생도 넣었다가 떨어진 학교예요. 올챙이 특목고 떨어지면 자사고 보내실 예정이시잖아요? 자사고 보내려면 출결에 흠집 생기면 안 되니 연습을 위한 조퇴는 시켜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올챙이 내신이 좀 딸리는 건 인정! 하지만 아직 시험도 치기 전에 안될 거라 단언하는 담임선생이 너무너무 싫었다.

"선생님! 올챙이 특목고 떨어지면 자사고 안 보내고 일반고 보낼 예정입니다. 출결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니 무단조퇴 처리하시고 연습실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월 말 올챙이는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와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두 곳에서 입사를 치렀다.

그리고...

 그리고 얼마 후 당당하게 합격통지서를 거머쥐게 되었다.

올챙이의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의 합격소식이 전해진 후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동안 올챙이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가해왔던 친구들의 수군거림이 멈췄고 후배들이 서공예 붙은 선배의 얼굴을 보기 위해 교실 앞이 북적 거렸다.

예상치 못한 올챙이의 특목고 합격 소식으로 선생님들의 찬사와 격려가 끊이질 않았고 올챙이를 무시하던 친구들도 뒤늦게 친해지려고 DM을 보내고 페이스북 팔로우 신청도 끊이질 않았다.

올챙이는 기분이 업되서 그렇게 가기 싫던 학교가 하루아침에 당장 가야 하는 곳으로 탈바꿈했고 그동안 받아왔던 상담과 정신과 치료 모두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올챙이가 정신과적으로 크게 문제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남들도 다 겪는 사춘기를 유독 좀 심하게 겪어서 그러려니 했다.

사춘기의 예민한 감정이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했을 것이라 생각했지 진짜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진짜 문제는 고등학교를 들어가고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었다.

항상 기분이 업되서 하이텐션인 상태에서 학교를 가고 집에 돌아올 때는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곤 했다.

녹초가 돼서 들어와서도 밤이 늦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다음날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퀭한 눈을 하고서도 괜찮다며 학교로 달음박질쳤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엇인가에 꽂히면 잔뜩 사들이는 소비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콜릿이 한 박스 호올스 종류의 캔디가 한 박스, 각종 과자 종류가 한 보따리, 네일아트 재료와 개봉조차 하지 않은 각종 화장품과 화장용품들이 한 보따리...

올챙이의 방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물건들이 자꾸자꾸 쌓여만 갔지만 미련 곰탱이같은 올챙이 마더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것이 양극성 장애의 아주 기본적인 양상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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