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1)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집주인 너 말이야 너.

by 디딤돌

설 연휴가 시작됐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고 난 뒤, 과일을 깎아 먹으며 TV를 봤다. 아침 9시에 차례를 끝내고 밥을 먹으며 보기에 마땅한 프로는 뉴스 뿐이라 다 같이 뉴스를 보는데 앵커가 말했다.


"최근 전세사기가 급증함에 따라, 2030세대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00지역에서 또 한 건의 전세사기가 터졌습니다. 집주인 50대 박모씨는-"


과일을 먹던 가족들의 시선이 TV를 향했고, 모두들 뉴스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요즘 전세사기가 난리래."

"그러니까. 저 돈을 다 어쩔거야."

"어휴... 불쌍해서 어떡해."


모두 한 마디씩 하는 사이, 나는 얌전히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물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비밀이 있다.

저 TV속에 나온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것.

나는 그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어색하게 사과만 베어문다.

나의 비밀을 아는 동생과 나의 시선이 닿고, 우리의 시선은 어색하게 다시 흩어진다.


전세사기 당한 그 불쌍한 애가, 나에요. 나.


그리고 이야기는 바로 그 전 해 겨울,

10월로 돌아간다.





내가 '전세사기'라는 것을 알게 된 날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었다.

나는 다음 날 무려 14시간의 비행기를 타는 유럽 출장이 잡혀 있었고, 오전 9시에는 공항으로 출발을 해야했다. 출장 전 날 맘 편하게 잠을 자면 좋았겠지만, 출장 전 날의 나는 매우 바빴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시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뉴스를 살폈다. 내가 잘 보던 커뮤니티에는 각종 연예뉴스부터 다양한 뉴스가 펼쳐져있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기사를 보던 나는 하나의 기사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단독] 00지역 또 전세사기 발생, 집주인은 50대 박모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뉴스의 제목은 이랬다.

사실 대개 이런 뉴스의 기사를 본다고해서 '어? 우리집 주인인가봐!'라고 하기엔 정말 쉽지 않은 매우 광활하고 포괄적인 기사는 이상하게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00지역. 우리나라 대도시 중 하나로, 적어도 인구가 천 만은 되지 않을까?

50대. 대한민국에 50대의 비율, 그또한 천 만은 되지 않을까?

박모씨. 우리나라 성씨는 김이박 순으로 그 수가 많으니까 박씨는 천 만 정도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확하지 않지만, 그냥 대충 생각해서 교집합을 만들어도 저 조건에 맞는 사람이 우리 집주인일 확률은 너무나도 낮아보였음에도 이상한 촉이 왔다. 나는 곧바로 초록창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00지역+50대+박00(집주인의 본명)


그리고 정말 소름끼치게도, 검색한지 1초만에 그의 이름이 떡하니 들어간 현수막이 화면에 떴다.

이미 나보다 먼저 피해를 알았던 피해자들이 붙여둔 현수막에는, 떡하니 나의 집주인 이름이 적혀 있었고 나의 정신은 아득해져갔다.


나, 12시간 뒤에 비행기 타야 하는데.

그 비행기 타면 14시간 동안 휴대폰을 못 하고, 그 뒤에는 출장을 가야 하는데.

근데 나, 전세사기 당했네?



*이 글의 '내용'은 모두 실제 있었던 사실에 기반했지만, 글에 나온 인물들의 신상은 만약을 대비해 실제 인물들과 다르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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