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8) 난 내가 멀쩡한 줄 알았지

집에는 어떻게 가시려고요?

by 디딤돌

이쯤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지난이야기.


나는 신축빌라에 전세로 입주를 했다.

입주할 당시, 보증보험이 되는 집만 찾아가며 열심히 집을 찾아 계약을 했으나 긴 이야기를 모두 생략하면 결국 우리 집주인은 전세사기범이었다. 심지어 꽤 큰 규모로 사를 친.

나는 우연히 발동한 '촉'으로 집의 계약이 끝나기 전, 집주인이 사기범임을 알게 됐고 전세 계약 해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단순히 문자로만 끝이나면 좋았을 계약 해지는 집주인의 구속으로 인해 복잡해졌고, 교도소에 계약 해지 내용증명을 보내고 나서야 계약 해지가 결정되길 기다리던 와중!


집이 '매매'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이 '공인중개사'라고 했으나 그것도 아니었으며, 우리집의 구조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결국 나는 찜찜한 마음과 함께 전화를 끊어야했다.


그 이후에 그 사람과 어떻게 됐느냐고?

'앞으로 전화하지 마세요.'라는 나의 말 이후에 전화가 오지 않는 것으로 그 사건은 끝이 났다.

세상 일은 그렇게 통쾌하거나, 사이다가 있게 끝나지 않았다.

그저 아무일도 없으니 다행이었을 뿐.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간은 흘러갔고, 내가 '계약 해지'를 알린지 3개월이 지나 드디어 나의 '계약 해지'가 결정이 됐고!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임차권 등기'를 마쳤다.

드디어 전세보증보험사에 낼 서류가 모두 준비된 것이다.


자, 그렇게 나는 모든 서류를 챙겨들고 보증보험사로 향했다.

아주 철저한 준비와 함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뻔한 속담이지만 옛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전세사기를 당해도 '정신을 차려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나는 보증보험사에 가기 전에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하고, 서류 하나도 틀리지 않기 위해 파일을 사서 그 안에 정말 꼼꼼히 서류를 넣어 챙겨들고 보증보험사로 향했다.


참고로 이렇게 보증보험 서류를 접수할 때는 '집주인의 주소지(관할지)'로 가서 제출을 해야 한다고 한다. 꼭 집주인의 주소지에서 해야하는 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해도 관할지로 우편 서류제출을 해준다고는 들었는데 나는 그냥 집주인의 주소지에 있는 관할지로 향했다.

이번 사건에서 나의 목적은 '무조건 안전하게' 였기에.


그 지역은 우리집에서 거리가 좀 있던지라, 나는 이른 아침 거진 첫차로 KTX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아직도 그 날 아침 거리의 풍경이 생각난다. 일찍 일어날 일이 잘 없는 나는 유독 반짝이는 햇살을 보며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고, 걱정과 긴장이 가득한 상태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열차에 올라탔다.


내가 보증보험사로 이른시간에 향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증보험사에조금 늦게 가면 서류 접수가 많이 늦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아주 이른 시간 출발을 해 거진 9시 정각에 보증보험사에 도착! 을 한 줄 알았는데...

나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지사로 잘못 도착해있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지만, 당시 나의 다급한 마음에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던 도보 20분 정도 그리고 택시로 5분 정도 걸리는 '전세보증보험 신청'을 하는 지사로 달려갔고, 다행히 늦지 않은 시간이라 3등정도로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어휴, 다행이다.



그렇게 잠시 기다려 내 차례가 되고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앉았는데,

담당자분이 내 집주인의 이름을 보자마자 그러셨다.


"아, 이 사람이구만."


'이 사람' 즉 집주인의 이름 세 글자는 이미 그 동네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내 앞에도 몇몇 사람이 서류를 접수하고 갔다고 했다.


사실 그 날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집주인이 전세사기를 친 규모는 상당했는데, 그래서 피해자들의 피해 범위와 해결방법도 각기 달랐다. 금액적 규모도 달랐으나, 집주인이 구속되기 전에 알아챘느냐(그 전에 전세가 만기된 사람들은 당연히 미리 알아챘다.) 구속이 된 이후에 알아챘느냐에 따라서도 제출한 서류가 다른 것 같았다.

누군가는 문자로 계약 해지가 된 것도 같고, 누군가는 구속되자마자 연락을 해서 '수용증명서'를 받았던 것 같았다. (*나는 '수용증명서'를 받지 못해 '교도소장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낸 사례였다.)


사례가 이렇게 다르다보니 담당자분들도 혼돈이 온 것 같았다.

차라리 그냥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서류를 받으면 되는데, 한 사람의 앞으로 오는 서류가 다 제각각인 상황. 그렇다고 누가 틀린 건 아니고, 전세보증보험 사이트에도 각각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온갖 설명이 다양하게 적혀있는데 사실상 담당자님들이 그걸 다 파악하긴 어려워보였다.


아, 그렇다고 서류 처리가 어설펐다는 게 아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느낀 건, 범죄자들은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어떻게든 사기를 치려 하다보니 '안전한 줄 알았는데, 한 끗 차이'로 사기를 당하기 일쑤였고 그걸 보장해주기 위한 방법도 가지각색이다보니 그걸 다 알고 있는 게 쉽지 않아보였다.



나는 너무나도 긴장이 됐다.

내 서류를 들고 '이거 이렇게 되는 게 맞나?'라는 한 마디만 나와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단순한 확인 설차에도 너무나도 긴장이 됐다.


사실 당시 나는 정말 준비를 꼼꼼하게 해간 편이었으며, 보증보험사 홈페이지에 있는 글도 거의 다 보았고, 거의 변호사 가 될 기세고 법률 조례까지 다 살핀 상태였다. 내 사례가 흔치않음을 알았기에 나는 그분들이 막히는 게 보이면 살며시 손을 들었다.


"저기, 그 부분은 홈페이지에 이렇게 나와있던데요. (캡쳐한 이미지 보여드리기.)"

"아, 그렇네. 고마워요. 이게 다 케이스가 달라서."


그리고 또 다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복잡한 부분이 생기면.


"이거 제가 앞선 사례를 본건데, 여기 이렇게 있더라고요. (찾아둔 사례 보여드리기.) "

"맞네. 저기 xx(다른 담당자)씨, 이 사례 한 적 있지?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거지?"

"맞아요. 이거 진짜 흔하지 않은 사례인데, 처리 되긴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를 담당해준 담당자님들은 정말 프로패셔널하셨다. (이후에도 끝까지 정말로.)

다만 정말 사례가 다 다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x100000'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례가 복잡해서, 내 내용증명을 작성해준 변호사분들도 사례가 바뀔 때마다 다시 내용을 찾아보실 정도로 복잡하게 일 처리가 되고 있었으니 당사자인 내가 철저히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류를 보시던 분들은 다양한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담당자가 와서 자신이 맡았던 사례와 비슷하면 조언을 해주고 하며 서류를 검토하셨고.


"네, 서류 접수 끝났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거의 울 것 같았다.


"진짜, 정말로 잘 부탁드려요. 정말 저 꼭 돈 받아야돼서."

"서류 잘 준비하셔서 괜찮을겁니다. 걱정마세요."


결국 최종 심사가 끝이나야 하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간절히 말한 뒤 그곳을 나서면서도 나는 멍했다.

어쨌든 서류는 모두 제출했으니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고, 아직은 찜찜했으나 약간의 홀가분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제야 허기가졌다.



나는 근처의 밥집으로 가서 멍하니 혼밥을 했다.

한참이나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하고 머리를 스치는 생각.

오늘 여기 오면서 KTX표를 예매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동네-전세사기범 동네'표를 예매한 건 생각이 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표를 예매한 기억이 없었다. 아니, 그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집에서 전세사기범 동네로 오는 표를 두 번 끊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서둘러 기차표를 확인해보니,

오전 7시에 '우리 동네-전세사기범 동네'로 오는 티켓 하나. 이미 사용 완료.

그리고 오후 2시경 또 다시, '우리 동네-전세사기범 동네'로 가는 바보 티켓이 하나 보였다.


... 아이고, 바보야.

굉장히 이성적인 척, 꼼꼼한 척.

서류를 준비하고 또 해서 어떻게든 내 서류를 통과시키려고 눈에 불을켜고 있던 나는 정말 이성적인 척을 하고 있읐으나, 사실 나는 좀 얼이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지금 얼마나 얼이 빠져있으며, 얼마나 큰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오늘의 서류로 내가 내 소중한 전재산을 날릴지, 잃을지가 결정이 되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걸 처리하러 온 거였다. 아닌 척 하지만, 정말 철저하게 모든 걸 준비한 척 했지만 나는 상당한 긴장상태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됐다.


나는 겨우 돌아가는 티켓을 다시 예매한 뒤 기차역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기절하듯 잡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약 해지부터 서류 접수까지 쉬운 게 하나 없었으니,

나는 여기서 제발 모든 게 끝이나길 바랐다.

이쯤이면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 네? 대출금을 모두 갚아야 보증보험이 승인이 난다고요?"


끝까지 쉽지 않은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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