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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Apr 30. 2024

한 우물만 팠더니 그 우물에 빠졌다 (1)

1. 나는 우물을 탈출할 수 있을까?

2009년.

첫 직장에 취업했다.


나의 첫 직장은 드라마에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작은 필로티 빌라의 1층에는 분식점이 있었고, 사무실 안에 화장실이 있었고(그 당시에는 첫 직장인지라, 이게 직장인들이 기피하는 회사의 형태인지도 알지 못했다.), 사소한 문구 용품조차 쉽게 살 수가 없어서 이면지 사용은 기본인데다가 매일 써야했던 딱풀이 모자라 늘 바닥을 박박 긁어써야했다.


당시 나의 첫 월급은 계산법이 참으로 특이했는데, 그렇잖아도 박봉인 업계에서 나의 월급은 '일급'이었다.

하필이면 나의 입사는 2월이었고, 2월달은 다른 달에 비해 날이 적었다. 적어도 월급 80만 원을 준다던 회사는 (그러니까 나의 일급은 2-3만원 선이었다.) 첫 달은 2월이라는 멋진 이유로 나에게 세금을 땐 60만 원 후반대의 월급을 주었다.


그 회사를 나는 무려 10개월을 다녔다.

역시 뭘 모를때가 좋기도 했으며, 함께 다닌 친구가 좋았고, 같이 일했던 선배들이 좋았다. 기억이 미화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모든 선배가 다 100%좋진 않았을지라도 그 곳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아직 어린 나를 위해 일이 일찍 끝난 날이면 선배들은 같이 롯데월드에 가주기도 했고, 나는 술값을 내지 않는 술자리도 주에 3회씩이나 있었다. 다행히 나는 술을 좋아했고, 그로 인해 대학 졸업 때보다 제법 포동해지긴 했지만 맛있는 맛집을 다니며 새벽까지 놀고도 다음 날 출근할 수 있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그런 것들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가 본 회사의 워크샵도, 그 모든 것이 꽤 괜찮은 기억이었다.


이후, 나는 십 수년에 걸쳐 직장을 옮겼다.

많은 기억들을 다 답아내기에 이것은 나의 취업 일기가 아닌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기에 짧게 이야기를 담아보자면, 월급이 채 백 만원도 안 되던 나는 늘 '실수령액 100만 원, 실수령액 200만 원'을 향해 달렸고, 목표가 있는 나는 늘 신이나서 달려나갔다.


돈에 대한 욕망 만큼이나 하고 싶던 게 많던 나는 일에 대한 욕망도 컸다.

선배들은 다행히 그런 나에게 업무 외적으로도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나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어떻게든 이 바닥에서 살아남겠노라 결심하며 최선을 다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돈도 열심히 벌었고, 사람도 열심히 사귀려 노력했다.


꽤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했으나, 혼자 맡는 업무도 많아졌다.

처음엔 숨이 막힐정도로 떨렸던 '나 혼자'하는 업무 미팅에 갔을 때, 고작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컸다고 생각한 나이였으나, 미팅에 들어가면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은! 당시 내가 보기에는 정말 멋드러진 사회의 어른들이 나보다 훨씬 멋진 차림새와 고급진 언어로 회의를 이어갔다. 나는 내 친구들과 하는 말투가 나오지 않게 조심하며, 옷장에서 가장 멋진 옷과 가방을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노력은 결실이 되었고, 안 풀리는 것 같던 일들도 기다리면 풀려나갔다.

누구나 말하듯이 인생은 계단식 상승이기 때문에 나의 삶이 턱, 턱 위로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회의를 할 때 더 이상 멋진 옷을 찾아 입으려고 하지 않아도, 꽤 괜찮아 보일 수 있는 옷이 많아졌다.

더 이상 어리다고 나를 표현할 수 없을 나이가 되었을 땐 내 후배들이 까마득했던 나의 과거 나이가 되어 있었으며, 그 아이들의 눈에 내가 멋지진 않았어도 적어도 사회의 어른 처럼은 보일법했다. 회의를 할 때면 늘 내 말을 누가 들어줄까 고심하며 말을 뱉던 것과 달리, 조금 더 자신있게 말을 뱉어낼 수 있었다. 막내일 때는 내 이야기를 크게 귀기울이지 않던 사람들도 내 직책에 따라 제법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쭉쭉 어렵긴 해도 계단을 밟고, 또 올라 이제는 내 아래 있는 사람이 내 위에 있는 사람보다 많아진 어떤 시점에, 나는 느끼고야 말았다.


나는 이 계단을 밟고 더 올라갈 수 있을까?


아래에 있을 땐 참으로 밟을 계단이 많았다.

무작정 밟고, 올라가기만 하면 됐고, 그 계단이 좀 높을 때면 위에서 끌어당겨주는 선배도 있었다. 그러나 위로 갈 수록 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를 올려주던 선배들이 서있는 계단의 면적은 좁아졌다. 그들은 나를 끌어주면 누군가를 밀어내야했고, 혹은 끌어당겨 준 본인이 어딘가로 사라져야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15년이었다.

최선을 다해 달렸고, 일에 있어 후회없이 매 순간을 달렸다고 생각했는데도 계단위로 올라가는 것이 맞는지 망설여졌다. 3,6,9단위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욕망이 차오른다더니 그것은 그 이후 12,15년에도 해당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것이 온전히 나의 자의만은 아니게 느껴졌다.


일을 잘 한다고 무조건 올라가는 것은, 어느 정도의 선까지였다.

그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조금 더 특출나야했고, 대단해야했고, 아니면 달라야했다. 나는 열심히했기 때문에 나 자신이 특출나가는 생각을 가지고야 있었으나, 그것이 대단하거나 남들과 다른가를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나 아니면 안 되는' 업무가 과연 있을까?

과거 한 연예인이 텔레비전에 나와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말에 공감을 했다가 머지않아 좌절했었다. 사실상 회사의 중간 계급에서는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없었다. 같은 값에 조금 더 친절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일을 더 잘하거나 하는, 아니면 선배님과 조금 더 친하다거나 하는, 아주 작은 사유들이 나를 자리에 있게 했다.


점점 나는 내가 대체될 수 없는 인물이 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냥 그 자리에 존재만 하고 있다면, 어쨌든 10만 원이라도 싼 값을 부른다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인 내가 특별해질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나는 그냥 '조금 더 열심히 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한 가지 일을 잘하니 그 일을 15년을 했고, 내가 판 우물은 꽤나 깊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파고 있는 우물은 아주 잘 팔 수 있었다. 나는 우물을 아래로 파지 않고 옆길로 새다가 벽에 있는 돌에 막히기도 하고, 갑자기 쓰레기가 튀어나와 경악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땅만 잘 골라서 그곳만 죽어라 파면 깊게 파지는데, 왜 엄한데 삽질을 하지?'

하지만 이내 나는 내가 '삽질'을 해보지 않아 '평범'해졌으며, 삽질을 했던 친구들이 우물의 옆구리를 뚫고가 지상으로 올라가거나 새로운, 더 잘 파지는 우물을 찾는 모습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나는, 우물이 아닌 다른 우물을 파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 우물만 팠던 나에게 그 일은 결코, 조금도 쉽지 않았기에 나는 먼저, 모종삽으로 어디라도 파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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