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딤돌 Apr 30. 2024

한 우물을 팠더니 그 우물에 빠졌다 (2)

2. 다른 우물을 파야하는 이유는 성공이 아니다.

내가 다른 우물을 파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하나의 일만 해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일만 한다는 게 무조건적으로 나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 경우에는 나빴다. 대학을 졸업하고 쭉 한 가지 일만 해보다보니 아무리 내 업무에서 견해가 넓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다른 일에 대한 견해가 좁았다. 관심이 없는 건 손도 대길 싫어하다보니 식견도 좁았고, 일을 하며 배우면 그때야 전문가 같았으나 시간이 지나면 모두 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이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전부'였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일만 하고 살았던 워커홀릭이라는 말과 좀 다르다.


딱히 취미도, 하고 있는 다른 일도, 배우고 싶은 다른 꿈도 없었다.

뭔가에 새롭게 도전해서 실패하지도 않고, 그저 이 안에 갇혀있는 것이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안에서 성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문득, 일로 인해 성장을 하지 않거나 내가 멈춰서있다고 느낄때면 더 없이 큰 좌절감이 밀려왔다.

내가 한 업무에 칭찬이 쏟아지면 그 날은 하루 종일 행복해 미칠 것 같고, 친구들을 만나서 즐겁게 웃었으나, 만약 내가 한 일에 대한 평가가 나쁘면 손톱을 물어 뜯었다. 불안감이 밀려오니 온 몸이 간지러워 몸도 벅벅 긁어대고, 그 불안감을 잊고자 술도 잔뜩 마셨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억울함이나 서운함도 쌓여갔다.


문제가 생긴 나는, 통로가 하나인 터널에 갇힌 사람 같았다.

앞이 뚫리면 무조건 직진이 가능하지만, 막히면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 차라리 터널 밖의 여러가지 길을 우회했다면,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풍경이라도 보고 다른 것을 보았을텐데 그게 불가능했다. 터널 안은 어둡고, 깜깜하고, 답답했고 그 안에서는 공황장애 비슷한 게 올 것도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단순하게 일에서만 탈출했다.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사실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도전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거 해서 결국 뭐 될건데?'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나를 붙잡았다. 결국 나는 15년간 한 우물을 파서, 거기서 좀 인정을 받았고 여기서는 꽤 잘 나가는데 그걸 포기하고 할만한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나에게 계속 물었다.


답은 당연히 '모르겠다.'였다.

아니오, 도 아니고 네, 도 아니다. 모르겠다. 안 해봤으니까.


하지만 불확실성에 걸기에 내가 15년간 지켜온 직장은, 나를 괴롭혔지만 나를 인정하기도 했고, 나에게 걸맞는 월급을 줬다. 더이상 나는 일급 2-3만 원을 받아, 달에 60만 원 대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이렇게 잘 나가는데 불확실에 나를 건다? 그게 참으로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한켠에, 이 일을 계속해도 나의 삶은 불확실하며, 이 일만으로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다른 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일을 통해 나의 가능성을 찾거나 내가 달라질 필요는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일단, 나는 다른 일들을 하기로 결심했다.

소소하게 해낸 다음에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어떤 것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일이 아닌데도 나를 기쁘게 만들고, 웃고 울게 할 수 있는 것들!

만약 업무가 나를 괴롭혔을 때라도, 다른 것을 보고 나의 자존감과 행복을 채울만한 것들!



그래서 나는 '결과'를 만들기 보다 '과정'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대개 어떤 사람들의 이직 성공기라던가, 직업을 바꾼 성공기를 들을 때면 부러우면서도 그 이야기가 나에게 결코 동기부여가 되진 않았다. 그 사람들의 도전은 대단했으며, 엄청난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을 나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의 과정이 굉장히 하찮았더라도, 이미 성공한 이후의 이야기다보니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해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성공하기 위해 원활한 장운동이 중요해서 아침마다 똥을 쌌습니다. 장 운동이 활발하게 된 이후에 머리가 맑아지고, 제가 하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1000억을 벌었습니다.'라고 하면, 솔직히 말해서 아침마다 그 사람을 따라 똥이라도 싸고 싶고, 진짜 그게 대단한 것 같을텐데!

만약 내가 '아, 저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침마다 똥을 쌌습니다. 아직 뭘 이룬 건 없는데, 그런 과정 중에 똥을 쌌습니다.' 하면? 나는 그냥 똥 싼 사람 됨. 아, 쾌변하시는구나.


그러니까 결국 누군가의 성공기에서 읽은 과정들이 대단했던 건, 내가 그 사람의 성공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는 평범한 과정들을 나는 너무 두려워했다는 걸 깨달았다. 똥을 싸든, 아침을 먹든, 새벽 4시에 일어나 요가를 하든! 뭔가를 해나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시작했다.

아빠가 10살 때부터 나에게 하라고 했던 '그것'을!

내 주변 사람들이 다른 거 못하겠으면 '그거라도 해'라고 했던 '그것'을!


그리고 내 시작은 굉장히, 미미하며! 개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 우물만 팠더니 그 우물에 빠졌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