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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Jan 18. 2022

 무당벌레

산고의 시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곤충을 꼽아보자면 단연 1위에 무당벌레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우선 생김새가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하여 귀여워 보이고, 반짝반짝 광택이 나다 보니 보석 같기도 하며,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것이 꼬까옷처럼 예쁘기도 하여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탈바꿈을 하는 곤충들은 그 과정 속에서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애벌레를 보고 성충의 모습을 가늠하기란 매우 어렵다. 무당벌레 또한 유충 시절엔 등에 가시처럼 생긴 돌기도 달려 있어 귀여움과는 퍽 거리가 멀다. 무당처럼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는 데서 이름이 유래된 무당벌레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비교적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가을이 되면 성충들은 크게 무리를 이루어 풀과 낙엽 밑, 건물 안 등의 특정한 장소로 이동해 겨울을 지내는 습성이 있다.

 정지되어 있는 듯 움직임이 크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되는 무당벌레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예쁘고 귀엽다고 함부로 다루면 다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노란색 액체를 내뿜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무당벌레를 자세히 보기 위해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다가 방심한 사이 '붕' 하고 그만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딱지날개로 덮여 있다 보니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간과해 생기는 일인데 그 경험도 나쁘진 않은 것이 딱지날개를 올리고 비상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당벌레는 초목의 줄기, 새싹 잎에 모여서 살며 식물의 즙액을 빨아먹고 사는 진딧물을 먹고 살기 때문에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익충으로 천적을 이용하는 자원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곤충에 속한다.


                            산고의 시간


 2021년 7월 23일 10시 즈음,

  한 여름 햇볕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제대로 보여주듯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오전 10시쯤 도심공원에 있는 배롱나무 잎사귀 뒷면에서 알을 낳고 있는 무당벌레를 목격했다. 노랗고 길쭉하며 반짝이는 알을 하나씩 하나씩 낳아 붙이고, 앞으로 나아가며 또 낳아 차례대로 붙이는 산고의 시간은 삼십 분이 훌쩍 넘는 동안 계속되었다. 내리쬐는 한여름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머리가 빙~하고 돌 정도로 땀을 줄줄 흘리며 30여 분을 지켜보다가 나는 그만 포기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저 어미 무당벌레는 산고의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천적의 눈에 알이 쉽게 띄지 않을 것과 뜨거운 햇살에 알이 말라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성의 본능으로 최적의 장소를 신중하게 물색하며 안전하게 알을 낳을 명당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최적의 자리를 선택한 곳이 잎에 과육이 많고 도톰하여 잎사귀가 쉽게 마르지 않고, 그늘이 잘 만들어져 시원할 곳으로 배롱나무 잎사귀 뒷면을 선택했을 것이다.

    

 1965년 7월 21일 아침과 점심 사이 새참 무렵,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는  '딩크족'이라 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들도 있지만 여자가 남의 집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오점 중의 하나였고, 거기다가 아들을 못 낳는다는 것은 칠거지악 중의 하나로 들어가는 시대도 존재했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던 친정엄마는 할머니한테 시집살이를 심하게 당하면서 살았다.

  “여자가 너무 매운 것을 먹고, 살이 쪄서 아이가 안 생겨!”

 친정엄마는 아이를 잘 들어서게 한다는 한약방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것은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은 모두 찾아 실행하듯 하였다고 한다.

 한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민간요법의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임신에 성공한 엄마는  1965년 7월 21일 아침과 점심 사이 새참 무렵, 한여름 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삼복더위에 산고의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는 죄책감으로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40대부터 손과 무릎, 허리 등에 퇴행성관절염이 찾아와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았다.

 

 1988년 10월 16일 03시 52분,

 그렇게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나는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져 친정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친정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신혼집이라고 말 하기엔 한참 부족한 자취방 같은 곳으로 겨우 방 한 칸에 부엌이래 봐야 연탄구멍 위에 양은솥 하나 덩그러니 올려놓고 밥을 할 수 있는 보잘것 하나 없는 협소한 곳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얻게 된 딸이 시집을 간다 하니 친정엄마는 세탁기와 냉장고 등 그 시절에 나와 있는 전자제품은 모두 사서 부산에 있는 신혼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장롱을 포함해 모든 전자제품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포장도 뜯지 못한 채 집주인의 양해를 얻어 창고에 쌓아두어야 했다. 신접살림을 싣고 온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친정엄마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고 했다.

 임신이 잘 되지 않았던 친정엄마의 체질을 다행히 물려받지 않았는지 난 곧 임신을 하였고,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배냇저고리를 사고 기저귀 천도 끊어다 몇 번을 빨고 삶기를 반복하며 깨끗하게 준비해 놓았다.

 진통이 시작되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던 산부인과에 갔지만 자궁문이 열리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집에 돌아가서 있다가 진통시간의 주기가 짧아지면 오라고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진통이 시작된 지 3일째 되던  1988년 10월 16일 03시 52분,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몸이 다 부서지는 것 같은 엄청난 통증에 소리도 많이 지르며 온 힘을 주는 순간 쑥 빠져나오는 느낌과 동시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긴 산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딸의 엄마가 되었다. 뒤처리를 마치고 안내해 주는 방으로 들어갔더니 그곳엔 아빠를 똑 닮은 딸아이가 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신기한듯 여기저기를 탐색하고 있었다.

     

 2016년 5월 20일 09시 25분

 그렇게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주며 내 뱃속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왔던 딸아이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내 부모와 마찬가지로 반대를 했었다. 딸을 가진 모든 부모는 딸아이의 남편으로 그 어떤 사람을 데리고 와도 온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딸이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딸과의 데이트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사위도 함께 자리를 했다.

  “엄마, 나 아기 가졌어~”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직장생활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일찍 아기를 가져서 어쩌나..... 잉태를 안 그 순간부터는 자식이라는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데 앞으로 고생문이 열릴 딸의 모습이 그려지며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이 사실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위는 기분이 한껏 고무되어

 “장모님, 허니문 베이비예요! 한 방에 성공했어요~”

라며 행복하고 신나는 흥분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딸이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위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서둘러서 출발했지만 아침 출근시간대와 겹쳐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두 시간이 훌쩍 넘겨 병원에 거의 도착할 때쯤 사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모님, 혜정이 무사히 아기 낳았어요. 그러니 서두르지 마시고 조심히 오세요.”

이를 어쩌나...... 얼마나 아팠을까...... 진통하는 딸아이 옆에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실에 도착하니 산후 처리를 다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던 딸이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엄마 나 여태 안 울고 잘 참았는데 엄마 얼굴을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오네.....!”

2016년 5월 20일 09시 25분, 그렇게 딸아이는 인내와 환희가 뒤엉킨 산고의 시간을 거치며 엄마가 되었다.


 엄마 뱃속의 소우주에서 더 크고 광활한 우주로 내보내 지는 탄생의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웅장한 일이다. 우리가 미물이라 부르는 숲 속의 곤충도, 동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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