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의 주제를 정하는 여정

이라고 거창하게 적었지만, 결국은 주제를 못 정했다는 변명

by 솜다


나의 사랑하는 동생 다희는 이따금씩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며 물어오곤 했다. 반복되는 제안이기도 하고 동생의 말 중 반은 걸러 듣는 현명한 습관이 있기에 그동안 '글은 뭔 글이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녀의 말을 나답지 않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유인즉, 동생의 친구들이 내 일기가 재밌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 일기장(블로그)을 그들이 훔쳐(?) 본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재밌게 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솔깃했다. 쓰레기 같은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 투성이라 창피한 맘도 있었지만, 재밌다는 피드백이 있는데 그게 대수랴.


그래서 한 번 신청해 보았다. 브런치 스토리에. '안 느끼한 산문집, '젊은 adhd의 슬픔' 등 꽤나 좋아하는 글들이 브런치에 연재가 되었기에, 이 명성은 잘 알고 있었다. 신청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4개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기만 하면 됐다. 첫 질문이 나에 대해 소개하는 건데, 주절주절 적다 보니 300자로 제한된 칸이 아쉽기만 했다. 이미 훌쩍 넘어선 300자를 추리고 추려도 감할 문장이 없길래 그냥 내 이름을 빼버렸다. 내가 담당자라면 이름 따위는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을 듯했다. 얘가 글을 꾸준히 쓰나, 재밌게 쓰나. 이게 중요할 거라 생각해서... (담당자가 '이 시키, 지 이름도 안 적었네. 너 탈락'이라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며칠 지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아니, 내가 합격 목걸이를 마지막으로 건 게 언제였지. 기분이 째졌다. 왘씨, 아직 살아있구나. 우와 이렇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날 오전은 마음이 붕 떠 있었다. 첫 글은 뭣을 적어야 잘 적었다고 소문이 날까-라는 나이대가 짐작되는 독백으로 오전을 보냈다. 주말 이후의 출근이라 안 그래도 일하기 싫었는데 잘 됐다 싶기도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하라고 뽑아놓은 직원이 이러고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짜증 날까. 허허. 하지만 모른다. 회사는 내가 이러고 있다는 걸 모른다. 회사는 모르게끔, 양지에선 열일하고 음지에서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첫 장부터 선언합니다. 이 글들은 대부분 음지에서 쓰인 글입니다. 아, 시작부터 마인드가 글러먹었다는 걸 널리 알리는 것 같아 심히 염려가 되지만, 높았던 기대치에서 갉아가는 것보다는 마이너스에서 시작하여 차츰 쌓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이 험난한 세상살이를 견디기 더 쉽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굴려서 글을 적어보겠다. 누가 시킨 건 아니어도, 할 일이 생겼음에 노잼이고 무료하던 일상에도 도파민 한 방울이 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이걸 누가 읽어주긴 할까..? 그리고 첫 글의 주제는 아직도 못 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