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

by 솜다



가장 친한 건 아니지만, 가장 오랜 친구라고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혁과 훈은 이름에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듯이 xy 염색체의 소유자들이다. 알고 지낸 지가 20년이다 넘다 보니 서로의 부모님도 다 알고 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늘 그렇듯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 아무 말 중 하나가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냐'였다.

나: 우선 난 엄마.

훈: 난 아빠.

혁: 나도 아빠.

나: 나중에 꼭 딸 낳아야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기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대부분 엄마라고 할 텐데. 훈과 혁도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덧 서른을 넘겨 각자 밥벌이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서 변한 건가. 나는 훗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될 테지만 그들은 무럭무럭 자라서(물론 정신이. 위로는 더 이상 안 자랄 테고, 옆으로 자라면 안 되니.) 아빠가 될 거라, 그들의 아빠를 더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 걸까. 그럴싸한 결론을 도출해 내고 싶었지만 그 자리엔 훈과 혁밖에 없었기에 애초에 모집단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어제 데이트를 하며 나의 남자친구 KB에게 물었다. 두 분 중 누가 더 좋냐고. 나보다 2살이 많은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두 분에 대한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미울 때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안쓰럽다고. 비단 본인만 그런 게 아니라며 KB의 친구들도 그들의 아버지들에 대해서는 이 안쓰러운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들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이미 하셨거나 목전에 두고 계실 나이대다. 이로 미루어보아, KB와 그의 친구들이 왜 아버지들을 안쓰러워하고, 내 남자 사람 친구들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됐는지 짐작이 조금은 간다.


근데 난 아빠가 안쓰럽지 않다. 슬픔과 연민의 감정은 더욱이 없다. 내겐 아빠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아빤 내게 나무다. 나보다도 훨씬 크고 강한.


근무지가 강남인 나는 경기도 본가에서 피 같은 나의 3시간을 출퇴근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매일 아침엔 천근만근인 두 다리로 축 처진 몸뚱어리를 옮기자니 죽을 맛이고, 퇴근길엔 한밑천 벌어서 뜬다는 생각 하나로 지하철에 오른다. 정말이지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이래로, 뻐킹을 외치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이는 모든 K-직장인의 공통된 마음가짐이라고,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나는 더 굳건히 뻐킹을 외쳤다. 허나 문제는, 내가 일한 지 얼마 안 된 병아리라는 점이다. 얄팍한 경력을 대패질하듯 긁어모으니 햇수로 5년이 나왔다. 아마 별다른 사유가 없다면 난 계속 직장에 다닐 텐데 이제 갓 5년이 지났을 뿐이다. 아, 5년이라니. 그것도 만으로 친다면 그보다도 적을 텐데. 하루에 한 번씩만 뻐킹을 외쳐도 최소 5천 번은 더 외쳐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아빠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다. 말이 쉬워 서른을 입 밖으로 툭하고 뱉어낼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25년 더 똑같이 반복되는 회사 생활을 살아라,라고 한다면 근심 걱정으로 잠에 못 들 것만 같다.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 지끈하다.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버텼을까. 아빠의 그 버팀이 너무 고생스럽지 않았길 바란다. 그럼에도 아빠가 안쓰럽지는 않다. 이건 다른 감정이다. 나는 아빠를 존경한다. 난 아빠가 대단하다.


내 동성 친구들의 아버지들에게서는 딸바보스러운 면모들이 많이 보인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빠는 딸천재에 가깝다. 매일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시비를 걸어오고 예쁘다는 말보다 못생겼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 30년을 이런 아버지 밑에서 컸더니 이에 익숙해져서인지 다정다감한 (가상의) 아빠보다는 지금의 아빠가 더 좋다.


자상한 아빠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 일말의 의심도 없다. 그럼에도 돌이켜 생각하면, 나의 학창 시절은 모두 아빠와 함께 했다. 나야 학창 시절을 늘 본가에서 다녔기에 당연한 얘기일 테지만, 등하교를 늘 아빠와 함께 했기 때문에 유난히도 아빠와 함께 보낸 느낌이다. 우리 아빤 매일같이 출근 전에 딸들을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재수할 때도 데려다주셨다. 심지어 대학생 때도 지하철역까지는 항상 데려다주셨다. 가끔씩은 진짜 대학교까지도 태워주셨다. 졸업 후, 뜬금포로 인천으로 통근을 하게 된 인턴 시절을 생각하면 가끔 울컥한다. 남양주에서 인천까지 출퇴근을 하기 위해서는 통근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그나마 가까운 통근버스 정거장은 집에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그 정거장까지 버스도, 지하철도 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또 아빠가 데려다주셨다. 새벽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졸린 눈으로 아빠와 출근길을 나섰다. 나는 아빠 덕에 셔틀을 타고나면 나머지 길은 편하게 갈 수 있었지만, 아빠는 회사로 출근하기엔 항상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나를 내려주시고 찜질방을 다니셨다고 한다. 평소에는 다니지도 않는 찜질방인데 중간에 붕 뜨는 시간을 위해 아빠가 택한 방법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강남으로 이직을 한 뒤에는 내 퇴근 시간을 맞춰 아빠의 퇴근시간을 조정했다. 우리 집이 지하철역과 거리가 꽤 된다는 이유로 내가 퇴근하고 집 근처 역에서 내리면 항상 아빠가 역전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퇴근 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빠에게 갔더니, 아빤 우연히 만난 친구(이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저씨는 웃으며 내게 '다 컸는데 아직도 아빠가 데리러 와'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러게, 우리 아빤 언제까지 나를 데리러 올까. 언젠가는 이 관계성이 역전되는 날도 올까. 그때쯤이면 내가 아빠를 안쓰럽게 생각하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최대한 오랫동안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오셨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든든한 내 방패막인 아빠가 이 모습 그대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 어깨가 굽고 키가 작아질 수도 있다. 이미 진행 중일 테고. 자연의 섭리이니 구태여 거스르라거나 이겨내라고 잔소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평생 나보다 큰 나무로 남아계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내가 잘할게,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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