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2.10
퇴근길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았다. 3호선에서 빈자리가 나서 웬 남학생과 나, 모두 앉으려다가 움찔한 상황이었다. 그날은 일주일 중에 몇 번 없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퇴근길'이었기에 앉지 못한대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양보하려고 했는데 학생은 거절하고 내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곧 후회했다. 왜 나는 살짝 끄덕였을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양보를 한다는 건 무지하게 고마운 일인데 왜 까딱였나. 앉아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 고개라도 좀 더 세차게 흔들 걸 그랬다. 그거 더 세게 한다고 힘든 것도 아닌데. 아니면 '감사합니다-'라고 말로 할걸. 다섯 글자, 입 밖으로 내뱉는 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입에 붙게 자주 말하고 다녀야겠다. 말로 감사 표현을 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고 싶다. 고개를 까딱이는 게 어색한 사람이고. 이거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나도 누군가한테 양보할게요, 남학생 님.
- 2025.02.19
보통 오전 일곱 시 이전에 지하철을 타는 나는 출근길에 제정신일 때가 별로 없다. 활동 시간대에 따라서 굳이 나를 분류해 보자면 아침형 인간이 맞긴 하지만 아침형 인간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의 출근-일주일에 무려 5일이나-은 내게도 버겁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화가 난다. 오늘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프롬 남양주 투 서울' 출퇴근러들과의 눈치싸움에서 어렵사리 쟁취해낸 좌석에 앉아서 출근했다. 사실 이들과 싸움을 해야 하는 것도 슬프다. 이들의 피곤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먼저 살아야 해서 고민 없이 앉아서 책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밀려오는 졸음에 책과 눈꺼풀을 덮었다. 1-2분 지났으려나. 내 앞에 아저씨 한 분이 서 계셨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훌쩍여도 너어무 훌쩍였다. 무엇보다 소리가 너무 컸다. 노이즈 캔슬링도 소용이 없었다. 아저씨는 왜 하필 내 앞에서 코를 훌쩍이는 걸까. 앞서 말했다시피 기민한 움직임으로 얻어낸 소중한 좌석이었기에 이 자리를 난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움직이길 바랐다. 제발 딴 데 가서 훌쩍여 주세요.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출근길 지옥철에서는 서 있는 자리 확보도 어렵다. 그래서 그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환승역까지 함께 했다. 속으로 애타게 그를 부른 지 20분 정도 됐을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헤어질 때 인사도 건넸다. 물론 속으로. 다신 만나지 마요.
그러고 환승한 지하철에서 조금 반성했다. 아저씨도 생리현상이었을 텐데 그 잠깐 못 견뎌하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니었는지. 코감기에 아주 제대로 걸려버렸는데 회사는 가야 하는 가장의 발걸음을 내가 욕 한 건 아닌지, 혹은 2년 전에 축농증 수술을 했으나 재발이 되어버린 수십 년 경력의 축농증 환자였을 수도 있고... 어찌 됐든 1시간이 넘는 지하철 출퇴근은 사람을 야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도 다짐한다. 너그러운 다솜이 되자고. 다짐만으로 그칠 수도 있지만, 다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께!
- 2025.03.01
빈 좌석은 없지만 서 있을 공간은 많은 지하철을 탔을 때는 생각이 많아진다. 어디에 서야 할까. 어떻게든 앉고 싶어하는 나같은 무릎연약쟁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눈치싸움의 시작이다. 프로 지하철 출퇴근러에겐 몇 가지 팁이 있긴 하다.
*경의중앙선을 이용할 때는 약속이 있어보이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왕십리에서 내리곤 했다.
*과잠을 입은 대학생들이 있다면 내릴 역을 대충은 짐작이 가능하다.
*찌든 직장인 처럼 보이면 환승역에서 내릴 공산이 크다.
*출퇴근 시간에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내리는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경우,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이기에 그의 신발이나 가방 등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사실, 말처럼 그저 팁일 뿐이다. 절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큰 소리로 묻고 싶다. "다음 역에서 내리시는 분!" 혹은 "세 정거장 이내에 내리시는 분!" 하고 말이다. 그럼 그 사람 앞에 가서 서 있을텐데. 파워N이라 그런지 이런 상상을 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나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