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도 많고 욕심도 많았다. 남들 하는 거 다 해야 했다. 그래서 그동안 꽤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놓아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다행이었다. 홀가분해지니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더불어 남의 시선도 나름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 되는 게 나다워지는 거라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같은 논리면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내향형 관종이라 생일이면 파티도 해야 하고 왕관도 써야 했다. 기념일은 챙겨주고 챙김 받고 싶어 했다. 멀지 않은 과거에도 그런 편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는 합법적 공주놀이가 가능한 미래의 내 결혼식에 모든 열정과 혼을 갈아 넣고 자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고수 헤이러 였다가 하루아침에 좋아하게 되었다는 가수 이적의 말처럼 취향은 한순간에 휙-하고 바뀔 수 있는 거라는 걸 또 새삼 깨달았다.
남자친구는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대신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냐, 신혼집은 어디로 하고 싶냐, 꼭 필요한 전자제품은 뭐가 있냐 등의 이야기로 우리의 미래를 추측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음, 뭐랄까, 감질났다. 어딘가에서 본 결혼 생각은 없으면서 연애는 이어가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나쁜 놈의 표본 같았다. 나는 비혼 주의자도 아니고 서른도 넘었다. 그래서 먼저 물어봤다. "우리 결혼해?" 하고. 사귄 지 반년쯤 지난 시기였다. 마침 tv에는 커플 팰리스가 틀어져 있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너랑 하고 싶다고. 알겠다고 했지만 tv에서 누구의 연봉이 얼마고 직업은 뭐고 자가는 어디에 있고- 떠들어대는 통에 얘기를 이어나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물었다. "어제 정신 없었어. 나랑 결혼할 거야?" 그렇게 다시 한번 확답을 들었다. 시기는 묻지 않았다. 조만간 다시 이야기하게 될 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그는 또다시 함구했다. 나로서는 꽤 오래 기다렸다. 그 이후로 또 반년이 지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