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는 탄탄한 기반이 필요로 했다. 남들보다 견고한 땅에서 시작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땅은 결국 돈인걸.
그는 입버릇 처럼 돈을 모은 후에 결혼을 하자고 했다. 내가 원한 건 변변치 않아 보이는 땅이어도 그 땅을 일구는 거부터 함께 하는 건데.
처음으로 결혼에 대한 얘기는 내가 꺼냈다. 그 이후에도 내가 꺼냈다. 그다음도 나였다. 혹여 부담이 될까, 고민고민하다가 꺼낸 얘기는 매번 별다른 수확 없이 옅어져갔다. 확신을 갖고 싶어서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가 가여워졌다. 골머리 싸면서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했던 밤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결혼 얘기를 꺼냈던 건 나름 잘한 일이었다. 그 말을 꺼내자 그는 '내후년에 하자고 했잖아'라고 대답했다. 짜증이 섞인 그의 목소리에, 나는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확신을 드디어 갖게 되었다. 물론, 내가 소망하던 확신과는 반대의 결이지만.
남자친구는 지금이 만족스러웠을까. 그래서 아직은 '지금'을 더 즐기고 싶었나. 내 오해라고 해도 내 잘못이 아니다. 그의 잘못이다. 내게 설명을 해주지 않은 남자친구의 잘못이다. 나를 설득해 주길 바랐는데 남자친구는 도망만 다녔다. 서른이 넘어서 하는 술래잡기에 지칠대로 지친 몸이었다. 내후년이 아니라 그 이후라도 남자친구가 나를 설득했다면, 나는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그 설득에 기꺼이 넘어갔을 텐데. 설득을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못 잡았던 걸까. 난 뜬금없이 꺼낸 결혼 얘기였어도 좋았을 텐데. 내가 대현이 결혼식에 다녀왔을 때, 재경 씨 청첩장을 받았을 때, 잠수교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을 봤을 때, 드라이브 중 흘러나오던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런지>라는 가사에 내가 한숨 쉬며 다음 곡을 틀었을 때. 이야기를 꺼낼 순간들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