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그것은 엄마와 나의 또 다른 탯줄

나 성장일기 : 심리학을 통한 자기 양육 ep5.

by 윤 슬


"엄마, 나 잠옷 사줘."


주말 저녁, 엄마와의 전화통화. 나의 첫마디였다.


잠옷 정도는 나도 살 수 있다. 나도 소위 말하는 밥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한테 왠지 모르게 사달라 하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과 꽤나 먼 거리에서 살고 있다. 본가를 방문하기 전이면 엄마는 매번 묻는 게 있다.

"먹고 싶은 거 없니?", "필요한 거 없니?", "사다 놓을 거 없니?"

없다고 할 때마다 엄마는 조금 풀 죽은 목소리로 "정말 없어?"라고 재차 묻는다. 아마 이 질문은 나를 위함도 있지만 그 너머 속에는 아직은 나에게 엄마이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나의 자립, 그리고 엄마의 존재감


나의 자립을 지켜보며 그녀는 기쁨과 섭섭함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씩 늘 때마다 그녀는 뿌듯해하며 동시에 내가 그녀의 품을 서서히 떠나고 있음을 느꼈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으나, 딸 인생에서 그녀의 존재감이 점점 줄어드는 듯한 허전함과, 본인께서 해줄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듦에 아쉬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잠옷을 사달라는 말, 그 말은 딸인 나는 아직 엄마인 그녀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아직 엄마로서 그녀가 필요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을 담은 한마디가 "나 잠옷 사줘."가 된 것이다. 잠옷으로 그녀는 엄마로서의 존재감을 느끼고 딸을 챙겨줄 수 있음에 기쁨을 느꼈으리라. 잠옷은 그녀에게 '엄마로서 존재의 이유'를 선사했으리라.



내 안에 살고 있는 여린 아이


잠옷을 사달라는 말, 그 말은 아직 나도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의미이다.

잠옷은 나에게 특별하다. 잘 때 입는 글자 그대로의 잠옷,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잠옷은 그저 취침을 위해 입는 옷이 아닌, 나의 해방과 보호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나에게 있어 귀가 후 잠옷을 갈아입는 행위는 삶의 무게와 굴레를 내던지고 본연의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또한, 누구도 침해할 수 없으며 온전한, 엄마 뱃속의 양수와도 같은 편안함을 상징한다. 나에게 잠옷을 입는 행위는 이토록이나 의미가 크다.


나는 척쟁이다. 겉으로는 유능한 척, 무던한 척, 혼자 잘 살아갈 것처럼 군다. 하지만 내 안에는 작은 아이가 산다. 어른인 척 하지만 아직은 고군분투하며 성장 중인 여린 아이가 있다. 아직도 잠이 오지 않을 땐 토끼 인형을 안고 자는 여린 아이가 살고 있다.

그녀가 사준 잠옷을 입음으로써 매일 입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의 가장 많은 시간 속에 엄마가 곁에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녀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엄마가 사준 잠옷을 입음으로써 내 안의 여린 어른아이를 보호하고 싶었다. 잠옷은 나에게 엄마의 사랑을 선사했으리라.



영원히 나의 엄마, 그리고 나는 영원히 엄마 딸



엄마한테 잠옷을 얻어 입기엔 부끄러운 나이이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오랫동안 엄마한테 잠옷을 얻어 입을 예정이다.

잠옷이란 엄마와 나, 서로에게 사랑의 증표이다. 그리고 그녀와 나의 마음을 연결하는 또 다른 '탯줄'이다.

엄마는 영원히 나의 엄마이며, 그리고 나는 영원히 엄마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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