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이불 대신 책을 선택했다.

나 성장일기 : 심리학을 통한 자기 양육 ep6.

by 윤 슬
"딸아, 왜 교복 끝이 다 해졌니?"


중학생 때 일이다. 교복 윗도리 천의 끝부분이 다 해졌다. 교복 천의 끝부분에는 나의 손길이 아마 수천 번은 닿았을 것이다.


애착 이불, 그리고 숨기고 싶은 습관 하나

나에겐 숨기고 싶은 한 가지 습관이 있다. 이불이나 옷의 끝 부분을 잡고 있거나 만지는 습관이다. 초등학생 시절까지 낡고 해진 이불을 고이 간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을 보아, 이 습관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듯하다. 하얗던 이불이 회색 이불로 변해버린 시간을 따지면 말이다.

회색으로 변해버린 이불은 바로 애착 이불이었고, 내 손에는 항상 애착 이불의 한 귀퉁이가 인질마냥 잡혀 있었다.

교복은 더 이상 애착 이불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선택한 대안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교복은 낡고 해졌으며 손때가 타버린 애착이불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다.


이는 삼십 대가 아직까지 가지고 있기엔 유치하고도 부끄러운 습관이지만, 아직까지도 손끝에 천이 닿아 있을 땐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망원동의 온기, 사람 냄새나는 정다움



얼마 전, 새해 다짐을 지키고자 서점에를 들렸다. 올해는 다양한 책을 읽자는 다독을 다짐했기에, 서점을 종종 들리곤 한다. 많고 많은 책들 중 가장 먼저 눈길이 간 책은 다름 아닌 '망원동 브라더스'.

다 큰 성인 남자 4명이 샌드위치처럼 서로에게 업혀 있는 우스꽝스러운 표지의 책이다.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책에 홀려버렸다. 살면서 가본 적도 없는 망원동이 갑자기 웬 말이냐.

내 머릿속에 있는 망원동은 '나 혼자 산다'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육중완 아저씨가 살던 옥탑방과 아저씨의 일상이 유일하다. 그 프로그램에서 육중완 아저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망원동 옥탑방과 망원 시장, 그리고 이웃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축하해 주는 모습, 같은 동네 이웃주민이라고 하나 더 챙겨주는 모습. 요즘 아파트 단지 속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들의 모습들. 서로를 챙기는 정다운 모습들.

나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책 중에 이 책을 골랐을까.

나는 '망원동'이라는 글자를 보며,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다움'을 소환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 책 표지의 살을 맞대고 곁을 나누고 있는 망원동 네 남자의 '온기'에 이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 냄새나는 정다움, 그리고 살결을 맞대고 곁을 내주는 따스함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애착 이불 대신 책을 선택했습니다."


심리학자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불안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안전 기지를 찾게 된다. 위협이나 외로움, 불안 등의 고통을 느낄 때, 애착 대상에게 다가가 안도감을 얻으려는 인간의 본능.


최근 2주간의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꽤나 서늘했다. 출근, 공동의 목표를 회의. 퇴근 후 개인 정비 및 휴식. 그게 다였다. 사람들과의 교류라곤 공동의 목표 달성의 위한 공적 교류가 거진 다였으며, 사적 위로와 심적 공유의 장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 냄새나는 온기가 느껴지는 망원동 브라더스는 나의 또 다른 애착 대상이 되었고, 나는 안전 기지인 이 책에 의지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외로웠나 보다. 사람들이 그리웠고, 사람 냄새가 맡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나 보다.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책을 통해 위로받고, 우스꽝스럽지만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4명의 브라더스와 함께 하고 싶었나 보다.


오늘 하루는 내가 외롭지 않게, 서늘한 하루를 보내지 않게 나를 안아주려 한다. 애착 이불과 망원동 브라더스를 손에 꼭 쥐고, 나를 안아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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