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스티브 잡스'를 읽다

by 전용원

이 책을 읽었을 때 왕조를 건국한 황제 사후의 시대에 대한 실록 같기도 하고, 문파의 압도적 장문인이 타계한 후 자리를 잡기 위한 후계자들의 활약을 담은 무협지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사관이 기록한 실록처럼 관찰자의 시점에서 세밀하게 사건을 기술하고 있어서 저자가 애플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경험한 것인가 정도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대립하는 성격을 가진 두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야기를 재미있게 서술하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11년 애플의 아이콘, 나아가 애플 그 자체라고도 해도 지나치지 않았던 스티브 잡스가 타계하자 애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죽음을 앞둔 잡스에게도 이는 중대한 관심사였습니다. 혁신기업이었다가 창업자가 떠난 후 급격한 쇠퇴의 길을 갔던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고심했던 잡스가 선택한 인물은 팀 쿡이었습니다. “혁신가”인 잡스와 달리 쿡은 “운영자”의 성격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거래업체들과 관계에서 공급단가를 냉혹하게 쥐어짜고, 부하 직원들을 몰아붙이며, 본인 스스로도 로봇처럼 지치지 않고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한, 혁신적인 기능과 심미적 디자인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는 기존의 “애플”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경영자였습니다. 오히려 잡스 시절 쿡 보다 세상에 알려져 있고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물은 디자인 부서 책임자였던 조너선 아이브였습니다.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 사후에도 애플워치 개발, 애플 신사옥 건설 등의 분야에서 기존 애플의 정신 –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제품 – 을 구현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에서 기대했던 정도의 성공을 거두지 못할 때도 있었고,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는 최고경영자 팀 쿡과의 관계에서 오는 좌절감, 확대된 책임에 따라 누적되는 피로 등의 중첩된 이유로 2019년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쿡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티브 잡스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애플을 운영하게 됩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의 제품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이익률을 개선하는데 역량을 기울이고, 아이폰과 같은 하드웨어에서 점차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 애플tv와 같은 구독 서비스 쪽으로 기업의 중심을 옮겨가게 됩니다.

현재 시점까지 이에 따른 쿡의 경영 성과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일단 10년 넘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영업이익이나 시가 총액 같은 경영 지표는 탁월하다고 하기는 어렵더라도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쿡은 애플의 주가 관리에는 상당히 성공했지만, 아이브로 대표되는 애플의 기존 정신을 유지하는 점에 있어서는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후자는 실패했다기 보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역량과 회사의 자원을 그런 방향으로는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야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봐야 팀 쿡이 설정한 방향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책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팀 쿡의 기업 고위 임원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적 소수자로서의 인권과 정의를 고민하기도 하지만, 해외 시장의 점유율과 관련될 때에는 인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기도 하는 등 모순적인 인간의 단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책은 팀 쿡과 조너선 아이브라는 두 인물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애플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부상, 트럼프라는 예상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등장, 삼성이라는 경쟁자 등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는 변수에 글로벌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는 것도 관심 가는 포인트였습니다.

특히 2016년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서 발생한 총격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 해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변호사에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자살한 총격 테러범의 아이폰을 수사당국에서 확보하였지만 암호를 해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암호를 맞히는 시도를 10번 실패하면 아이폰의 모든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라는 공공의 이익을 내세우는 미국 법무부와 개인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앞세운 애플 법무팀과 경영자들의 고민과 설전에 관한 섬세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플 주식에 투자하고 계신 분,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생태계를 사랑하는 분들을 포함하여 애플과 글로벌 IT기업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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