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주한 논어

by 전용원

어느 날 논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무가 아닌 일을, 생각이 든다고 즉각 행동에 옮기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그런 생각을 한 시점이 언제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읽고 싶었던 이유도 고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는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조금 있어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이들의 뒤섞임이었는지, 그렇다면 그 비율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미루고 있던 기대와 욕망을 다시 끌어낸 것은, 한겨례신문에 연재되는 김영민 교수의 논어 에세이였다. 화려하면서도 도발적인, 그리고 기괴한 느낌의 에세이는 그 대상이 되는 원전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들게 하였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널리 알려진 이 구절로 시작된 논어는, 처음에는 “흠…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감이 있었다. 효도하고 우애있고 윗사람에게 충성하고 분수를 지키고 는 인과 예. 좋은 경구들 많았지만 일각에서 공자를 봉건, 반동사상가라고 하는 말들이 왜 나왔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기대에 비하여 익숙하지 않은 한문 실력(번역이 있긴 하지만)과 얕은 인문적 감수성에 기인하여 위대한 고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비중이 컸을 게다. 논어를 인생의 책으로 꼽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내게는 논어가 처음 원전으로 읽어 본 동양 고전 정도로만 남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그래도 고전의 힘이라고 할지, 읽어 갈수록 꺽였던 기대감도 반등하였고,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고 생각하여 끝까지 읽는데 성공했다. 마지막 편까지 읽고 나서는, 논어 강의를 한 번 들고 싶었다. 압축적인 구절이 많다 보니, 해석이 필요해 보이기도 했고, 내가 생각한 것들이 텍스트를 너무 오독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예전에 고전 강좌를 듣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사람들이 왜 그럴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원전을 한 번 보니 나도 해 보고 싶었다. 그건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 할지는 모르겠지만.



“군자”라는 이상적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관한 강론(인, 예)들과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들 – “정치는 식량과 병기와 신뢰를 충족시키는 것인데, 버려야 한다면 병기 – 식량 순이어야 한다”, 논어의 대부분은 이런 내용이었고, 이런 내용들 중에서 인상 깊어서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는 “인간” 내지 “생활인”으로서의 공자의 모습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다스려야 할 땅 배경이 될 수 있는 권세를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 포부를 펼치기 위해서 평생을 공부하고 주유했지만,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했던 현세의 아쉬움. 그러기에 여러 차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남이 나를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고 말하던 공자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莫我知也夫)고, “나를 알아주는 자는 하늘밖에 없다”(知我者 其天乎)고 탄식을 하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서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겠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고 하는 모순이 아리게 다가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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