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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Aug 18. 2024

아시아에서 작은 유럽을 만나다

버스에서 바라본 마카오는 가히 놀라웠다. 거리 곳곳마다 피어져 있는 초록잎의 나무와 야자수. 홍콩보다 더욱 이국적인 신축 빌딩과 포르투갈 영향으로 파스텔 색감의 짙은 건축물. 일본 디즈니씨에서만 봤던 유럽풍의 건물을 마카오에서 실제로 보니까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여행 시작부터 예감이 좋았다.

베네시안 리조트 호텔 로비

특히 베네시안 호텔이 압도적이었는데, 영국의 빅 벤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시계탑과 도로를 연결해 주는 리알토 다리, 그리고 산마르코 광장. 마치 궁전에 와있는 듯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려함의 극치가 느껴졌다. 어느덧 도착해 입구 앞에서 내렸다. 입구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도로에는 줄지어 오는 택시들로 가득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내가 지금 유럽의 박물관에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중세 시대 그림과 고풍스러운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카지노 입구장

마카오 하면 떠오르는 것 하면 바로 카지노 아닌가. 룰렛 위에서 요란하게 굴러가는 구슬 소리, 잭팟이 터졌을 때 광기 어린 웃음을 짓는 주인공, 판 위에 탑처럼 쌓여있는 칩들. 영화 속에서 비치던 카지노의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 입구장에 도착했다. 들어가려고 하자 무섭게 생긴 경호원 분이 제지하시더니 여권을 요구하셨다.


(여권을 보며) "Where are you from?"

"South Korea“

"No, No." (손으로 X자를 취하며)


분명 나는 만 19세인데 왜 입장이 제한되는 거지? 의문이 들어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만 21세부터 출입이 가능한다고 쓰여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어렴풋이 입구에서 들려오는 슬롯머신 기계음을 듣는 것으로나마 만족했다.

그다음으로는 유럽풍의 주택들과 포르투갈식 성당이 한 곳에 모여있는 타이파 빌리지로 향했다. 홍콩과는 180도 다른 풍경 때문인지 이곳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현지인들도 있다고 한다. 베네시안 호텔에서 도보로 25분 정도 소요되는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카오를 천천히 렌즈에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걸었다.


거리 곳곳마다 설치된 체스같이 생긴 볼라드, 다양한 색깔로 칠해져 있는 깨끗한 도로, 자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우람한 호텔들을 감상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재미가 풍족히 채워졌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가게 문은 셔터로 굳게 닫혀 있었고,차는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어느 한 건물의 창문이 눈에 띄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하트 모양으로 쳐져 있는 철장이 독특해서였다. 홀린 듯이 사진을 찍고 나니 순식간에 콜로안 빌리지에 도착했다.


쨍쨍한 햇빛을 감당하기 버거워 주변에 보이는 아무 식당으로 무작정 대피했다. Big chicken이라는 음식점으로 한식당이 아님에도 특이하게 한국 노래가 나왔다. 마침 목을 축일 겸 배도 고파 복숭아 아이스티와 토마토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직원분이 가져다주신 물 한 컵을 허겁지겁 마셨는데, 그 모습을 보셨는지 계속 물을 갖다 주셔서 감사했다

복숭아 아이스티 안에는 레몬 한 조각과 얼음이 한가득 들어가 있어 더욱 시원했다. 복숭아의 달콤한 맛과 레몬의 신 맛이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다. 빨대로 쪽쪽 빨아먹을 때마다 밑에 있던 젤리가 씹혔다. 씹을 때마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중독적이어서 일일이 뚜껑을 열면서까지 골라 먹었다.

토마토 스파게티는 큰 그릇에 담아져 나왔는데 김치도 같이 주시는 거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주신 건지, 원래 같이 제공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카오에서 김치라니. 먼 타국이어서 그런지 내심 반가웠다. 나오자마자 면에 소스가 잘 스며들도록 젓가락으로 마구 비볐다. 꾸덕꾸덕한 소리가 침샘을 자극했는데, 한가득 집고 입에 넣자 감칠맛과 새콤함으로 입 안이 가득 메워졌다. 먹다가 갈증이 날 때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티를 쭉 들이켰는데 그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었다.

이제 아이스티로 목도 축였고, 스파게티로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다시 걸을 시간이다. 영화 <도둑들> 촬영지인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교회를 보기 위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한국인이라면 이곳이 더욱 의미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한복을 입고 있는 조각상이 있기 때문이다. 마카오에서 신학과정을 이수하여 전시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성당이 보이는 곳에앉아 잠시동안 그의 발자취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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