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친구, 아로스와 마크
집결지에 도착한 뒤, 가이드님과 일행분들께 고생 많으셨다고 인사를 드리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스탠모어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전광판을 확인했지만 글자가 흐릿하게 보여 옆에 있던 할아버지께 조심스레 길을 물었다. 거친 인상에 잠시 망설였지만, 내가 말을 꺼내자 할아버지는 반갑게 웃으며 스탠모어 방향이 맞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기차가 도착하자 연신 감사 인사를 드리고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전광판에 ‘다음 역은 스탠모어’라는 안내가 뜨자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했다. 그때 1층에 있던 할아버지가 2층으로 올라와 내게 손짓했다.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신호였다. 보통은 길만 알려주고 돌아서기 마련인데, 할아버지는 끝까지 나를 챙겨주셨다. 그 따뜻한 배려 덕분에 마음이 한층 더 따뜻해졌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근처 피자집에서 모짜렐라 피자를 포장했다. 호스텔에 도착해 박스를 열어보니 스몰 사이즈치고는 양이 꽤 많아 혼자 다 먹기 버거웠다. 소스가 묻은 손을 씻기 위해 공용 주방 싱크대의 손잡이를 올리는 순간,“딱”소리와 함께 손잡이가 힘없이 떨어져 버렸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몸이 굳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손잡이를 세게 올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부러질 리가 없었다. 누군가 이미 고장 내고 들키지 않으려 억지로 끼워둔 듯했다.
손잡이가 부러진 건 직원에게 말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거다. 손잡이가 망가져 물을 끌 수가 없었다. 이미 밤 11시가 넘어 리셉션은 문을 닫았고,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리셉션 앞에는 연락처가 적혀 있었지만 현지 번호가 없어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손잡이를 다시 끼워보려 했지만 이미 부서진 탓에 아무리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엌에서 나오자 아로스와 마크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번역기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마크가 휴대폰을 꺼내 리셉션 직원의 번호를 보여줬다. 내가 현지 번호가 없어 전화를 못 한다고 하자 그는 대신 전화를 걸어 영어가 서툰 나를 대신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3분쯤 지났을까. 통화를 마친 마크가 돌아와 직원이 상황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전했고, 내일 출근해서 CCTV를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럼 계속 흐르고 있는 물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마크가 무슨 말이냐며 되묻자, 나는 직접 현장으로 데려가 보여주었다.
아로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도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무언가를 누르자 곧 물이 멈췄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우리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그만 배꼽이 빠지도록 웃고 말았다.
“너만 괜찮다면 같이 와인 마실래?”
“너무 좋지!”
아로스의 솔깃한 제안을 끝내 거절할 수 없었다. 밤 12시, 부엌에서 와인잔을 꺼내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 한 병과 1리터짜리 펩시, 그리고 얼음이 가득 담긴 와인 쿨러가 놓여 있었다. 아로스는 내 잔에 얼음을 넣은 뒤, 와인과 펩시를 직접 따라주었다.
“와인에 콜라를 섞으면 더 맛있어! 한 입 마셔볼래?”
처음엔 낯선 조합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지만 한 모금 마시자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칼리모초라고 스페인과 남미에서 친구들과 파티나 축제할 때 자주 즐겨 먹는다고 한다.
“넌 어디에서 왔어?”
“난 한국에서 왔고, 지금 세계여행 중이야! 넌?”
“난 튀르키예에서 왔어. 헐 너 한국인이야?”
‘튀르키예’라는 말이 나오자 반가운 마음에 나는 아로스에게 앙카라,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같은 지명을 줄줄이 말하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또 현지에서 케밥과 카이막을 직접 먹어보고 싶다고 하자, 아로스는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을 정말 좋아한다며, 튀르키예에서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말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튀르키예가 도와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해”
“맞아. 나도 알고 있어. 우리는 형제의 나라잖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어릴 적 6·25 전쟁을 공부하며, 튀르키예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빠르고 적극적으로 파병을 결정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약 2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해 유엔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전투력과 큰 희생을 보여준 나라였다. 만약 튀르키예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작은 영토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에 있던 마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게 됐다.
“나는 카메룬에서 왔고 호주에는 돈을 벌기 위해 왔어”
“카메룬! 만나서 반가워. 나이지리아 옆에 있지 않아?”
“오! 그걸 어떻게 알아? 대부분은 잘 모르는데”
“구글 지도 보는 걸 좋아하거든. 카메룬은 치안이 어때? 나 한 번 가보고 싶어”
내 말을 들은 마크는 잠시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아마도 네가 가면 위험할 거야. 카메룬은 치안이 별로 좋지 않거든”
“그렇구나, 하하. 그래도 마다가스카르, 나미비아, 탄자니아, 케냐 같은 다른 나라들도 가보고 싶어”
“나미비아랑 탄자니아는 괜찮아! 꼭 가봤으면 좋겠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로스가 서울의 한 달 월세가 얼마인지 물었다. 나는 네이버에서 튀르키예 리라 환율을 검색해 14,772 리라(약 50만 원)라고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사실 서울에서 한 달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오 정말? 그래도 시설은 조금 기대 이하일 수 있어”
“아 그래? 시설은 상관없어. 너 이름 이거 맞지?”
아로스는 내 인스타그램 DM 창을 열어 ‘Hi. Jin’이라고 적힌 메시지를 보여줬다. 나도 ‘Hi Aros’라고 답장을 보냈다. 새벽 1시, 밤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조용한 부엌 불빛 아래에서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