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모니터링 강화하고 스프링클러 점검이나 잘하시길
국내 전기차 화재를 정리한 페북의 글입니다.
제가 전기차 배터리 실명제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배터리 회사’를 안다는 것이 소비자로서 안전한 전기차를 고르는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제조사를 안다고 그걸로 화재 발생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렵고요.
만약 전기차 선택기준을 배터리 제조사로 한다면 “무엇이 안전한 배터리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있어야 합니다. 과연 있기나 할까요?
1. 공유한 글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한 건 LG 엔솔의 배터리입니다. 이것도 판매량 대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난 것이지 내연기관 차 대비 많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 내연기관 차는 연식이 오래되어 관리가 안된 차들이 많기 때문에 최신의 전기차와 맞비교는 불공정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된 빈도에서 전기차 화재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과장된 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배터리 또는 BMS, ICCU 등 전동화 파워트레인 자체의 문제로 화재가 발생한 건으로 압축한다면 빈도는 훨씬 더 줄어듭니다.
과연 여기서 배터리 제조사를 아는 게 도움이 될까요? 옛날에 그랬지만 지금은 괜찮다고요? 언제부터 괜찮아졌지요?
2. 국내 또는 해외에서 리콜을 했고 화재 사례가 많은 ’불안한 배터리 회사‘라서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터리 제조사를 보고 구매할 때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요.
그렇게 중국에서 문제를 일으킨 차와 똑같은 차가 국내에 수입되어 판매되었나요? 설령 배터리 용량, 조립 방법이 같다고 해도, 차마다 BMS와 모터가 다르고 인버터와 출력을 제어하는 VCU 프로그램도 같지 않습니다. 주행과 충전 환경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안전한 전기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까.
어느 자동차가 엔진에서 불이 나는데, 연료 분사 시스템이나 엔진 블록 또는 변속기를 제조하는 회사가 같은 걸 쓴 차를 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게 논리적이고 안전한 차를 고르게 되나요?
패러시스의 배터리를 단 차가 중국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리콜을 했다고 하는 것이, 벤츠 EQE의 화재와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건 찾기도 어렵고 실제 고리가 거의 없을 겁니다.
이런 논리라면 그동안 ‘화재 발생 위험’을 이유로 리콜을 한 차들은요? 화재 빈도도 높고 리콜에 배터리 전량 교체를 진행 중인 LG엔솔 배터리는 왜 갑자기 괜찮아진 건가요?
3. 결국 기분이 나쁘고 불안하니 내가 직접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라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근데 이게 해결책이 아니니까 문제를 삼는 겁니다.
배터리 결함 만으로 모든 화재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배터리를 모니터링하는 BMS가 이상상태를 감지 못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충전/허용 마진을 작게 잡아 불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차에 달린 충전관리 프로그램이 어긋나 과전류가 흘렀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배터리하고 무관한데, 멀쩡한 배터리에 불을 지른 것이나 다름 없어 화재가 생긴 건데 배터리 제조사를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이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기준인가요?
그리고 패러시스가 세계 10위의 듣보잡(?) 업체라 불안하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럼 9위부터는 괜찮고 3위 안쪽은 무조건 믿어도 되는 건가요? 실제 화재 빈도와 판매량이 거의 비례하는데도요?
또 같은 차종 1만 대 판매 중 몇 대까지 불이 나면 안전한 건가요? 원래 자동차는 연료건 배터리건 주행을 위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기계입니다. 불이 나는 상황이면 불이 난다는 말입니다. 1만 대가 팔려 단 한대도 불이 안 날 수는 없으니, 아직 불이 안 났으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10대까진 괜찮으니 그 이하로 불이 난 차와 배터리를 고르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개인마다 수용성이 다르니까요. 이게 어떻게 기준이 됩니까.
국내에서도 자동차 안전연구원이 배터리 팩에 대한 충돌, 낙하 및 침수 등 테스트를 합니다. 최소한의 안전기준이니 차라리 이걸로 믿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브랜드”를 갖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기준인가요?
차라리 문제 제기를 하려면 패러시스 배터리를 단 EQE와 EQE SUV의 총 판매량 대비 화재 빈도를 가져와 이야기를 하던가요. ‘중국산’이고 ‘듣보잡’이라고 실명제를 하자는 건 논리에도 안 맞는 일이잖습니까.
‘안전한 배터리와 제조사’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실명제 이야기는 혼란만 가중될 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배터리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커넥티드 기능으로 이상상태를 운전자에게 통보하도록 강제하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전화해 스프링클러 언제 점검했냐, 작동 잘 되냐를 물어보고 확인하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결정적으로, 자동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이런 선택을 한 자동차 제조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요. 우리는 그 브랜드의 자동차를 샀지 배터리를 사지 않았습니다. 간단합니다. 차 잘 만들었는지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됩니다.
합리적으로 정리되길 기대해 봅니다.
#전기차화재 #배터리실명제 #과연 #자동차칼럼니스트이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