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자격이 있나요

by 윤설

며칠 전

도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의 집 이야기였다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떠난 아들에게 할머니의 부고를 전하고

겨우 이틀째 여행 중인 아들 내외에게 돌아오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부모도 아니고 한 다리 건너 일이기도 하고

굳이 신혼여행까지 중단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고

그곳에서 명복을 빌 수도 있지 않겠나 그저 그런 남의 집 이야기였다


그 순간 도리에 대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리에 대해서

책임에 대해서

가족이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쏟아졌다


도리를 말하고 있었다

아니 도리를 말하는 척 하며 사실은 권리를 떠들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다른 것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장면들


나는 속으로 묻고 있었다

과연 이 말들을 할 자격이 이 사람에게 있는지


웃음이 나왔다

책임과 도리와 신의라는 자리를 눈발보다 더

가볍게 차버린 사람이


묻고 싶었다

과연 저게 무슨 뜻 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래도 용서해야 한다고

맞다 용서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와 기억은 다르다

본인이 한 행동은 한순간이어도

상대방이 잃어버린 시간은 한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붙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고

잃어버린 삶을 다시 세우며 살아야하는 시간이 남아 있다


무력감 절망감 수치심 분노 그리고 용서

그 시간들을 지나기 위해 또다른 삶의 시간을 잃기도 한다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삶이 멈춰진 채

나아가지도 못하고 복구만 하며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도리를 말하기 전에

살아온 자리를 먼저 보라고


남들은 잊고 다 용서했다 해도

그 일을 만든 사람 만큼은 잊어버리면 안 된다


목에 박힌 가시처럼 한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 비열했던 기억은

그 사람의 삶에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책임의 몫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반성한 사람이라면

도리를 말하며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도리를 말할 자격은 책임을 살아낸 사람에게 있다


반성은 말이 아니라

태도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묻게 된다

정말 반성과 후회였을까

그렇게 믿어야 그 무게를 덜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존중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존중의 가장 기본이다


존중은 교양으로 베푸는 호의가 아니다


그 사람의 살아온 시간의 축적과 결과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형식으로

얻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도리에는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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