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는 나를 남겨두지못했다

지워진 자리에서

by 윤설

내가 왜 이렇게 서럽고 서운했을까

병실에 누워 그 생각을 오래 했다


나는 상대를 덜 힘들게 덜 아프게

참아 주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에게 책임은 곧 사랑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외롭다 말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병실 긴 복도를 매일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먼저 말했다


"괜찮다"고

"내가 할께"라고

'"이해한다"고


나를 향해 움직이던 그 방향들을 내가 멈추게 했다

나의 괜찮다는 말로, 내가 할게 라는 말로


그렇게 해도 되는 당연함으로

나는 나를 지우는 쪽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서럽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날 닳아 없어지게 해 버려서


"안돼" 라는 말을 삼키는것이

책임인 줄 알고 살게

나를 방치해 버렸다


다들 나에게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 힘들다고, 난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냥 견디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웃었다


이제야 알았다


책임은 사랑 일 수 있지만

존중이 빠진 사랑은

결국 나를 지우고 휘청이게 만든다는 것을


한발 물러서 본다

까치발 들지않고

내 손끝이 닿는 자리까지만 다시 그어본다


사랑을 버리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에게 책임지는 것이 사랑이지만


다만

이번에는

나를 남겨두고 덜 닳아 없어지게

사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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