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씨네 ]
아빠 : 진해 씨
엄마 : 송여사
아들 : 치수, 나는 '야'라고도 자주 부른다.
막내딸 : 막돼먹은 혜원 씨, 나다
고향 : 경북 김천시 증산면
양봉장 있는 동네 : 수도리
밭이랑 양봉장 같이 있는 동네 : 금곡리
시골집에 내려오면 나의 알람은 엄마다.
<가시나야, 뭐한다고 2시까지 잠을 안 자! 우리 집에 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그래야 일을 시키지!!! 해 뜨면 더워서 암 것도 못하는데!!!!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자나!!!!!> 쇼미 더 머니에 나오는 래퍼들보다 우리 엄마가 랩 더 잘하는 것 같다. 엄마, 근데 우리 집의 '우리'에 내가 없는 거야? 꿍시렁 꿍시렁 거리며 일어났다.
아침 9시 50분의 알람이었다.
*엄마, 아빠, 오빤 5시에 일어난다.
<더운데 점심에 냉면 먹을까?>
<뭔 냉면이야. 밥 먹어. 하나로 통일해>
아빤 내 말을 개똥으로 듣고 나가버렸다.
결국 점심은 밥파와 냉면파로.
밥파 : 엄마, 나, 이모부
냉면파 : 아빠, 동네 아재들 3명
내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을 때, 아빠랑 오빤 꿀을 뜨고 식당에서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미역국을 한솥이나 끓였다. 오빠는 더운 데서 일하고 와서 입맛이 없다며, 나중에 알아서 먹겠다고 누워있더니. 뒤늦게 냉면파에 합류 의사를 밝혔다.
<진작 말하지, 저 새키. 육수 꺼내놓게> 씩씩 거리며 얼어있던 육수를 전자레인지에 잠깐 해동을 시키더니 그새 면이 불을 까 봐 도로 꺼내 칼로 부숴버리는 엄마였다.
캉 캉 캉! 육수 얼음이 묻은 칼로 삶은 달걀을 반 가르자 노른자가 물기에 흐트러지고. 노른자 묻은 칼로 오이를 숭덩숭덩 자르니 오이에도 노른자가 묻고. 그게 다 한 그릇에 담겼다. 지난봄, 내게 고명이 흐트러지지 않게 육수를 살살 부으라던 엄마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혜원 : 완전 개밥이다 개밥. 치수야 개밥 묵으라~
엄마 : 저게 자꾸 개밥이래여. 냉면한테!
혜원 : 얼음 개밥 무라~
엄마 : 가시나가!!
식탁에 내려뒀더니 이모부께서 물었다. <이거 냉면이야?>
ㅋㅋㅋㅋㅋ웃음바다
우리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사시사철 저녁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는다.
농협에 가서 엄마&아빠 짝, 나&오빠 짝. 종류별로 두 개씩.
아빠 몫의 투게더까지. 박스 가득 사온다.
우리동네 농협은 아이스크림은 50%할인을 해서 가세가 기울진 않았다.
서울에선 냉장고도 작고 돈을 아끼느라 먹을 만큼만 사다 두는데, 김천에 오면 차가운 아이스크림에서 가족들의 품을 느낀다.
아빠 : 수도 따라갈래?
혜원 : 내가 할 수 있는 거 있나?
아빠 : 집에 있던지
치수 : (속닥) 야, 아빠 삐진디
혜원 : (속닥) 그체
혜원 : (우렁차게) 콧바람 쐬러 함 가볼까!!!!!
식탁 위에 놓여있던 먹다 남은 큰 생수병을 후다닥 챙겨 차에 탔다. 후진하는 중에 생수병이 입에 닿지 않게 아슬아슬 물을 마시는 동생이나 <콰악 브레이크 밟아버릴라> 약 올리는 오빠 놈이나.
우린 아직 철들려면 멀었다.
쓰레기라도 주웠다.
심플 클래식, 내가 잡고 만다.
아빠는 필사코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나무 이름 모야모?
달라드는 벌들을 떼어내려고 양봉장 근처에 있는 민박 아줌마네에 차를 세웠다. 아줌마는 어딜 나가셨는지 안 계셨다. 주인 없는 집 앞에 나무를 오빠가 한참 들여다보길래 나도 옆에 덩달아 서있었다.
나는 한량처럼 <억수로 덥다> 하고 있는데, 오빠는 <벌 많이 꼬이네. 뭔 나무지?> 했다. 이욜 치수놈 양봉 후계자 다 됐네. 역시 난 도시사는 어중간한 시골인이었다.
아빤 <귀욤 나무였나. 뭐라카더라>하더니 민박 아줌마한테 전화해 대뜸 마당에 있는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아줌마도 모른다고 했다. 귀욤이라니. 오빠는 <아빠 말 다 사투리라 쳐봐도 안 나와여> 정녕 자신은 사투리를 안 쓰는 줄 아는 걸까. 나는 소명을 받은 신하처럼 저 나무 이름을 꼭 알아내야겠단 의지로 moyamo(모야모)라는 식물&나무 어플까지 깔았다.
차에 다시 올라타 집으로 가던 길에 아빠는 <모야모에 물어볼까?> 말했다. 엥? 유튜브 보는 건 알았는데 아빠가 이런 어플도 알다니. 시대에 조금은 따라오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용인에 사는 아이리스 아저씨가 알려줬다.
고욤나무.
방언은 귀욤이 아니라 귀염이었다.
종종 모야모에서 만나요 진해 씨.
시원하다 못해 여름에도 발 담구기가 쉽지 않을 만큼 차가운 물이 퀄퀄거리며 세차게 흐르는 곳인데 비가 한 달 내내 오지 않아 수박 하나 못 띄울 판국이었다. 나무랑 꽃들도 시들시들 삐쩍 말라가고 있었다.
아빠가 날이 가물어 금곡 밭도 쩍쩍 갈라지고 있다며 토마토랑 파에 물을 주고 오라고 했다. 대낮에 뿌리면 해가 뜨거워 금세 날아가니 해질 녘쯤 다녀오라고.
밭에 가는 길에 아기 고라니를 만났다.
<게 섰거라!!>
저 아이가 선다고 해서 해줄 건 없었다.
오빠는 벌을 보고, 나는 아빠 심부름을 하기로 했다. 이 쪽에 있는 나무도, 저 쪽에 있는 곰취도 뙤약볕에 목이 말랐을 것 같아 호스를 끌고 이리저리 쏘다녔다. 호스 구멍을 검지 손가락으로 막아 물줄기로 무지개를 그리며 최대한 멀리 쏴봤지만 호스가 턱없이 짧았다. 색바랜 파란 코끼리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거푸 물을 날랐다.
물을 다 주고 났는데도 오빤 아직 할 일이 남은 모양이었다. 괜히 물을 덜 준 척 농땡이를 피웠다. 봄에 거름을 잔뜩 깔아뒀던 땅이라 갯벌이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물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결국 소똥 샤워를 했다.
<아빠도 저번에 빠지더니. 어휴 똑같아여 둘 다> 오빠는 한심하다듯이 날 쳐다봤다.
역시 그 아빠에 그 딸! 농땡 대마왕 부녀다.
내일은 나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
꿀 뜨러 가야 한다.
처음 가는 거라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