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달리기 나
경희대학교 옆 서천동에는 보름달 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달리기가 끝나면 달리기 앱에는 무지갯빛 동그란 경로가 만들어진다. 한 바퀴를 돌면 보름달. 반 바퀴를 돌면 반달 모양과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달리기 거리를 보름달 거리라 부른다. 나는 보통 햇빛이 없는 밤에 달린다. 차와 사람이 없어 고요한 거리, 차갑게 깔린 시원한 공기, 공원에서 보이는 화려한 아파트의 야경. 이런 것들이 있는 보름달 거리는 내가 성장하고 경희대학교에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보름달 거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2년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 수업을 기대하고 있던 나를 기다린 건 ‘코로나로 인한 모든 수업 비대면’이었다. 1학년 1학기에 비대면 수업은 별로 흥미도 없었고 할 게 없던 나는 취미로 달리기를 시작했었다. 그때만 해도 혼자 달리는 보름달 거리는 내게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보름달 거리가 특별해지기 시작한 건 동아리의 주된 코스인 보름달 거리를 동아리원들과 같이 뛰면서부터였다.
“백지장도 맞들면 더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다 함께하면 더 쉬워진다는 말이다. 통념상 달리기는 단순히 혼자 뛰는 운동이라 위 속담의 사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달리기 운동은 혼자 달리는 것과 다 함께 달리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혼자서 달리는 것은 통념대로 협력 운동이 아니라 해도 같이 달리기는 다 함께 합을 맞추고 돕는 협력 운동이다. 혼자서 3km 정도 뛰면 슬슬 종아리도 아파지고 숨이 찬다. 그냥 ‘적당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남은 거리는 대충 걷거나 해서 때워버린다. 하지만 같이 달릴 때는 내가 힘들어도 더 버텨서 다 함께 도달한다는 ‘협동 의식’이 생긴다. 다 함께 맞춰지는 호흡소리, 발이 닿는 소리의 박자감, 나와 다른 사람들 몸에서 나는 뜨거운 열기 이런 것들에서 느껴지는 ‘하나 된 마음’이 협동심 아닐까. 그렇게 나는 협동심을 배우고 협동심을 통해 힘듦을 극복하는 성취를 경험하며 보름달 거리에서 성장한다.
보름달 거리는 다 함께 달릴 때는 협동심을 가르쳐 주고 혼자 달릴 때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 한번은 혼자 보름달 거리를 달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회상해 본다. 현재 거리 4km 시간 32분, 현재 페이스는 8.00 알람이 울린다. 중간중간 쉬면서 뛰었기에 느린 속도가 아쉽다. 하지만 매번 열심히 뛰면 기록은 더 좋을 수 있어도 몸에 금방 무리가 쌓인다. 무리가 쌓이면 무릎과 발목을 다치게 된다. 다치면 뛰는 것 자체를 하지 못한다. 반면 적당하고 꾸준히 하는 것은 힘들지 않고 다칠 위험이 적다. 이처럼 적당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 게 달리기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보름달 거리는 경희대학교 적응에 도움을 주었다. 달리면서 고독감을 떨치고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장소이다. 성취의 기쁨과 다 함께하는 팀워크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학교 공부도 보름달 거리를 달릴 때처럼 최선이 아니더라도 다치지 않을 만큼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이 보름달 거리에서 내 정체성을 형성하고 경희대학교에 적응해 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나는 이 보름달 거리에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