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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살이 May 01. 2021

자밀 자키의 <공감은 지능이다>를 읽고

왜 공감해야 할까?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타인의 마음상태를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요즘 시대에 아무리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일지라도 공감능력이 뒤처지면, 훌륭한 직원으로 거듭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공감능력은 하나의 경쟁력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 시장의 다양화가 가속화 되면서 여러 시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고객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의견에 공감해주는 기업들을 찾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성취도와 연관된다. 그렇다면 공감능력이란 건 천부적인 것일까? 아니면 기술의 영역으로 개발 될 수 있는 속성의 것인가? 이에 대한 물음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 있다. 자밀 자키의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이다. 자밀 자키는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통해 공감하는 방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집필 했다. 방법론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 공감이란 얼마나 위대한 능력인지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공감의 중요성을 서두에 이렇게 밝힌다.


“공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친절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친절함이란 대가를 치르면서도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는 다른 동물들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은 서로 표정을 읽고, 관심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며 저마다의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진 침팬지도 자기 무리에겐 친절을 베풀지만, 그 외에는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공감을 연습하면 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것이 기술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100퍼센트 완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상태보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공감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자밀 자키는 역설하고 있다. 책의 챕터는 총 7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더 큰 챕터로 나눈다면 3가지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신경과학적으로 뇌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어떤 원리로 인간이 공감하게 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어왔던 이 전의 고정주의의 반론으로 공감의 방향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내용에 힘을 실어 설명한다. 심지어 그것은 사이코패스에게도 해당 된다.


두 번째는 접촉을 통해 편견을 줄이고, 증오의 감정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나눈다. 특별히 한 명의 인물을 토대로 이를 훌륭하게 반추하는데, 반유대주의자인 토니 매컬리어가 어떠한 접촉의 경험을 통해 극단적인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 유대인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극복하고 반성하게 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는 디지털을 비롯한 사회 시스템의 체계가 어떤 공감가능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친절한 시스템은 친절한 마음을 키울 수 있고, 공감에 바탕을 둔 훈육은 문제아로 여겨졌던 아이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앞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경험하게 될 관계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 할지를 논의한다.


이를 객관적이며 포괄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부록을 삽입함으로써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책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관찰 할 수 있다. 자밀 자키는 앞에 공감의 중요성에 ‘친절함’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도 저자의 그 친절함이 어김없이 묻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공감의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공감이 투쟁이라고 비유하듯 인류와 나의 선의를 위해 인간은 계속해서 공감하기를 결심해야 할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는 친절함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공동번역)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오래된 금언과 함께 세계의 흥망성쇠란 언덕을 꾸준히 넘어왔다. 바로 그렇다. 공감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허물과 직면 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이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공감은 미래를 올바르게 이끄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나를 돌아보는 연습을 할 때, 공감은 저자가 밝히듯 미래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급속도로 세계화 되는 미래사회에 공감능력의 강조는 자명한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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