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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살이 May 21. 2021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보고

관음증과 도덕, 그리고 일상의 창들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보았습니다.


이창에 나오는 주택은 마치 감옥의 건축물인 판옵티콘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판옵티콘은 한명의 권력자가 다수의 수감자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이며, 이를 현실로 회귀했을때는 정보화시대에서의 전자감시와 같은 예들로 추동할 수 있게 되겠죠. 물론 감독이 이를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든지 이 집이란 공간안에서 주인공인 제프리스는 타인의 생활을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SNS에 들어가 남의 사생활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히치콕은 이러한 공간의 요소를 영화에서 유연하게 다루기 위해 뉴욕의 임대주택을 반영해 세트를 구축했다고 합니다. 폭 38피트, 길이 185피트, 높이 40피트로 제프의 거실과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마당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쏜월드가 거주했던 집에는 수도와 전기가 공급되었다고 하지요. 


제프는 위험을 무릎쓰고 사진을 찍는 사진기사로써 외연적으로는 영웅심과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의 시종일관 도덕적 감수성과 이는 쌍수를 이룰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대칭적으로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관음적욕구'를 드러내는 요소로 쓰인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 때문에 주인공이 되었겠지요. 제프는 사고로 인해 다리 부상을 입고 재활치료를 하고 있었고, 휠체어에 하루 종일 앉아 이웃주민들의 행동을 보는 것이 그의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녀의 간병인 스텔라와 애인인 리사는 관음에 중독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관음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말아 버렸지요. 그러던 중에 병든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쏜월드가 새벽에 세번씩이나 큰 가방을 왔다갔다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제프는 쏜월드가 아내를 살해했을거라고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프의 의견을 친구 형사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믿어주질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터너의 집 앞에 있는 화분을 항상 파는 강아지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창가로 나오지만, 쏜월드만은 나오지 않는 것을 제프가 확인하고는 더욱 그 의심은 커지게 됩니다. 움직일 수 없는 제프를 대신해 애인인 리사가 쏜월드의 집에 들어가 결혼 반지를 찾게 되지요. 리사는 곧 집에 도착한 쏜월드에게 붙잡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가 되지만, 그 현장을 바라보고 있던 쏜월드는 제프와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잠시 후 쏜월드는 제프를 찾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고, 창가로 떨어뜨려 죽일려고 시도하지만,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상황은 종료됩니다. 쏜월드는 자신의 범죄를 순순히 인정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제프의 집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제프와 리사를 천천히 비추면서 막을 내립니다. 


히치콕의 도덕적 감수성과 시선


히치콕은 실존주의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도덕주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이 영화는 정서적으로 일종의 따뜻함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따뜻해서 엔딩은 관습적인 측면이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병든 아내를 살해하는 쏜월드와 주택에서 계속해서 벌어지는 파티의 현장들은 대립구조를 이루면서 사회의 현장을 히치콕의 시선으로 내려다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유심히 상대방을 관찰하는 사람들만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간호원 역할인 스텔라는 처음에는 제프의 간음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가서지만, 후반부에 들어설수록 점차 제프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고, 점차 도덕적으로 사건 현장에 몰입하고 변모하는 모습들은 사실 우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후반부에 비춰지는 이웃 주민들과 흘러 나오는 음악은 영화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리사가 쏜월드의 집에 침입하고 그에게 잡혀 폭력을 당하기 일부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음악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관음증에서 시작했다가 도덕으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분명 미스터리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영화는 더불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개개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유추하게 하는 히치콕 특유의 작가주의적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통찰에 기여하는 영화라고 할수도 있겠네요.


"코미디는 롱숏으로 바라보는 인생이고, 비극은 클로즈업으로 보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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