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아 불러 보는 가족의 이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인 어느 가족을 보았습니다.
어느 가족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이후로 동양권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가족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보편적인 양식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족이 처한 상황을 뒤틀면서 흥미로운 지점으로 이끌어 갑니다. <걸어도 걸어도>에선 15년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맞이하여 모이면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의료진의 실수로 친자가 바뀐 두 그룹의 부모가 어떻게 두 아이를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 갈 것인지를 다루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 여동생인 스즈와 어색한 관계로 시작하여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를 잠잠하게 연출해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족을 다루는 변곡점에는 '삶'과 '죽음'의 간격 사이에서 존재하는 가족을 지렛대로 삼으며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란 정의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초의 공동체로 인간에게 '가족'이란 타자와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집합체라면 그것은 혈연으로만 좌지우지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바로 그렇지요. 특히나 그러한 지점이 잘 드러나 있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이 영화는 서로 많은 부분 닮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완벽한 타자가 어떤 방식으로 가족이 되는지 말이지요. 어느가족에서도 마찬가지로 '타자'의 개입이 두드러지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이 영화에는 자신의 본명을 사용하는 인물이 없습니다. 모두 가명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아픈 과거들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각자 사연을 갖고 우연히 모인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합니다. 그 중심에는 아빠의 역할로 등장하는 시바타 오사무가 있지요. 오사무는 자신이 구한 쇼타라는 아이와 도둑질로 삶을 연명하고 있었고,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역할인 노부요, 풍속업소에서 일하는 마유, 할머니인 하츠에, 그리고 영화의 시발점인 린이 그 가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가짜'에 대한 이미지들이 곳곳마다 등장하는데, 이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할머니는 독거노인이 아니고, 부부도 아니며, 업소에서 나누는 사랑도 진짜가 아니죠. 그러나 그 가짜로 보이는 관계에서도 '진짜'로 서로를 위해 행위하는 모습들은 진짜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이건 비밀인데, 우린 가족이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마지막 장면일 겁니다. 지금까지 가족 영화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총 정리와 같은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쇼타가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치다가 종업원에게 도망치다가 높은 곳에 뛰어 내려서 잡힌 이 후에 결국 그 사건 이후로 '가짜'로 밝혀진 이들이 흩어 지게 되는데, 그 후에 다시 만난 오사무와 쇼타는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나를 두고 도망 가려고 했어?
그랬지 그 전에 붙잡혔지만 미안하다
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
(마중 나가는 장면)
나 그 때 일부로 붙잡힌거야.
그랬구나
(버스를 타고 아빠의 이름을 부르는 쇼타)
진짜 가족으로 진짜 아빠로 여기고 싶었던 한 소년의 바램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남들의 물건을 도둑질 하는 아버지가 자신을 통해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나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생이 수반되는 행위에는 균열이 있습니다. 그 균열은 진심을 깍는 도구가 되어 집니다. 지금까지 부르지 못한 아빠의 이름을 끝끝내 부르는 쇼타에게 오사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가족이란 건 반드시 혈연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타자가 우리의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만 같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누군가에 필연적으로 종속되어 삶을 살아갑니다. 진짜 안식처가 어디에 있는지 방황하면서 말입니다. 이 영화는 가짜가 아닌 진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어느 가족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더욱 단단하게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