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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살이 Jun 01. 2021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의 <스페인 여자의 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배경으로 펼쳐 지는 이 이야기는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한다. 베네수엘라는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에서 치안이 좋지 않기로 명성이 자자한 나라이다. 살인률 세계 1위, 범죄율 세계 1위의 국가로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에선 하루에 무려 21명이 살해된다고 한다. 작가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는 카라카스 출신으로 베네수엘라의 어려움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기에 소설은 사회의 암담함을 반영하면서도 사회 고발적인 면도 들어가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주요한 혁명적인 인물(차베스)에 대해선 전혀 논의되지 않지만, 배경을 베네수엘라로 설정한 것은 분명히 저자의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아델라이다는 카라카스 출신으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죽음과 늘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에 그녀가 살던 건물에 한 무리의 혁명단과 보안관들이 침입하면서 그녀는 그녀의 친구였던 아나라는 여자의 남동생 혁명단이 된 산티아고와 조우한다. 산티아고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많은 이들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던 중에 이웃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스페인 여자의 딸’로 불리는 아우로라 페랄타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델라이다는 페랄타의 스페인 여권 발급이 허가 되었다는 우편물을 보고, 그녀의 신분을 훔쳐 베네수엘라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우로라 페랄타가 되어 스페인에 입국한다. 카라카스의 밤을 잊고 새로운 출발은 그녀에게 과연 아름다울까?


스페인 여자의 딸은 독자들에게 생존이 강제되는 잔인함과 도덕적인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실상 아델라이다에겐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종착지를 피할 안식처만 필요할 뿐이다. 그녀는 역설적으로 국가 있는 이방인이다. 늘 국가를 떠나 삶과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늘 상 경험하기 때문이다. 페랄타가 되어 가는 과정을 곧 시작 할 때 아델라이다는 이렇게 말한다. 


“후회할 때가 아니야. 나 자신에게 말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야.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가 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는 그녀의 덤덤한 호소 속에서 삶의 숭고함이 무가치하게 소비된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 생존을 위해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다른 내가 된다는 것. 아니 되어야만 한다는 것. 무조건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아델라이다의 스페인 여자의 딸로 사는 삶이 어떨지를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하게 된다. 소설이 끝나고 나서도 그녀의 삶이 공허하지 않기를, 찬연한 삶이 깃 들기를 그렇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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