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까?
꿈이 있는 삶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첫 주제를 정할 즘 나는 응답하라 1988을 다시 보는 중이었다. 마침 ‘어린 시절 꿈’에 대해 방영했는데 부모님들이 돌아가면서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극 중에 덕선이가 동일 아빠에게 지금 아빠의 꿈은 뭐냐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그는 자식새끼 셋 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거라며 웃으며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이 우리네 부모님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 역시 엄마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꿈 역시 동일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우리 삼 남매 건강히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 엄마의 꿈이 내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시절 나는 그 꿈이 우습고 가볍게만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꿈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의 꿈이었다는 걸 이 나이 먹어서야 알았다니 참 철부지 같다.
사실 나는 요즘 임신을 하면서 내 꿈과 멀어지는 것 같아 우울해지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오는 것 자체로도 축복받을 일이지만, 때때로 내가 꿈꿨던 내일과 달리 하루하루 부딪히는 현실의 벽에 또다시 좌절하게 되는 건 아닌지 겁을 먹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둘만의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결정을 하기까지 남편과 꽤 많은 고민을 했었다. 게다가 아이가 생기지 않는 난임 부부가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신경이 쓰이는 문제기도 했다. 임신은 생각처럼 우리가 원하는 때에 자판기 버튼 누르듯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며, 더불어 낳아만 둔다고 알아서 크는 세상이 아니기에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이를 가졌더니 코로나가 터지고, 그동안 배우던 글쓰기 수업도 지속적인 휴강에 들어갔다. 나에겐 이제 8개월이란 한정적인 시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배움이 고팠다. ‘글로 먹고살고, 글로 위로하고 싶다’는 이 작은 소망이 때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얻은 기회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부를 다시 놓아버리게 될까 가끔 마음이 쓰리기도 하다.
나는 내게 주어진 ‘글쓰기’라는 능력을 알게 된 날부터 단 한 번도 꿈이 바뀐 적이 없었다. 어쩔 땐 이게 너무 당연해서 무조건 잘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적도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 꿈이 부럽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솔직히 꿈이 뭐라고 부러워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땐 ‘꿈이 없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스스로 꿈이 없는 사람으로 살게 되면서 알 수 있었다. 가지고 있던 책들을 모두 버리고 두 번 다시 글쓰기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우울했던 내 10대를 악착같이 버티게 해 줬던 꿈을 놓고 나니 삶이 무기력하고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고독과 방황밖에 없었다. 결국 좌절하고 부러졌던 나를 다시 일으킨 것도 그놈의 꿈이었다. 꿈을 다시 찾아서 기뻤고, 그만큼 더욱 커진 무게에 두려움도 더해졌다. 작년 여름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찾던 꿈으로 한발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창작이 막혀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 고통조차도 때때로 감사했다. 현재는 코로나의 여파로 2월부터 글쓰기 수업은 무기한 연장되어서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스스로가 아니기에 결국 나는 돌파구를 찾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실행 중이다.
고작 그거냐 싶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꿈을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노력들을 열거해본다. 일단 1월부터 독서 소모임을 하면서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 집이며, 추천받은 책들도 꾸준히 보고 있다. 덕분에 이 달까지 10권을 읽을 수 있었다. 휴강이 길어지면서 이대로 손을 놓으면 영 감을 잃어버릴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름의 스터디도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회원이 단편들을 읽고 합평을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10주가 넘었다. 최근에 이사로 인해 두 달 정도 정신이 없어서 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막상 금요일마다 얼굴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열정적인 토론을 이어간다. 서른 편 가까운 작품들을 읽으면서 얻은 장점이 크다. 최근에 주목을 받는 신인 작가 중에 좋은 글을 쓰는 여성 작가들을 알게 됐고, 전에는 단순히 독자로써 보던 글들이 배워야 할 교제가 되니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들도 많다. 거기에 틈틈이 격주로 올라오는 신문사 칼럼도 읽고, 서로 좋은 작품들을 공유하는 중이다. 시청 중인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온라인 선생님도 한 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이어져오는 모임에서 내가 내고 싶은 마음의 소리에 좀 더 기울이는 법을 터득 중이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엄마로서의 내 삶보다 아직까지는 나 스스로의 꿈이 더 소중하다. 솔직히 놓고 싶은 마음보다 잡고 싶은 마음이 아직은 더 크기에 체력이 바쳐주는 한 나는 노력할 것이다.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삶 속에서 태어난 것처럼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나 역시 꿈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줄지 의문이 든다. 부모님의 꿈이 나였다는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나는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노력하고자 한다. 언젠가 아이가 나에게 엄마의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내 꿈이라는 말이 아니다. 내 꿈은 어땠고, 너 역시 나처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이고 싶다. 그렇기에 내 꿈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