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만족, 열등감과 우월감
나는 거울을 보는 게 싫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입꼬리가 쳐지고 늘 우울한 눈빛이 가득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좋아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셀카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누군가와 같이 찍힌 사진은 더더욱 싫고 단체사진을 찍을 일이 있을 땐 늘 보이지 않는 후미진 영역에서 최대한 나오지 않게 몸을 숨기곤 했다. 특히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스튜디오 촬영이 손에 꼽히는 스트레스 요소였다. 신부가 위주인 웨딩업계 특성상 타협해야 하는 부분들은 대부분 포기했지만 스튜디오 촬영만큼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최근엔 남들 다하는 만삭 촬영도 안 하기로 했다. 이런 모습들이 아직 내면 속 본인을 부정하는 면모가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20대의 본인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너그러워지고 둥글게 깎이는 중이다.
과거 나약하던 10대 시절을 지나 히스테릭에 가까운 날카로움이 20대의 내 삶 속 곳곳이 박혀있었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풍족한 지원이란 나에겐 딴 세상이었고, 양보와 희생을 강요받고 모범을 지켜야 하는 억압적인 청소년기를 겨우 버텼다. 혼자가 익숙했던 나는 조금 일찍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댈 곳 없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랐기에, 알려주는 이 하나 없었기에 맨 몸으로 버티고 견뎌야만 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해탈을 하지 않았을까.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덕질과 폭식만이 허기진 마음을 채웠지만 그 마저도 스물 어덟을 기점으로 놓아버렸던 것 같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스스로의 취향이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건강하게 채우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3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용서한 게 불과 5년이 되지 않는다. 어리고 나약했던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며 안아주기까지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아직도 서툴고 모자란 모습들이 한 번씩 나오지만 그 모습 또한 스스로라고 인정하는 게 아주 미약하게나마 편해졌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지만. 적어도 나를 힘들고 아프게 만드는 것들에게 거리를 두는 일이 비겁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아파봤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그런 아픔이 없이 건강한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설픈 박애주의를 표방한다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해빠진 캔디라 생각하진 않는다. 좀 뜬구름 잡는 소리겠지만 나는 내 또래 여성들이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냥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본인을 흔드는 일들이 많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짊어지는 불합리함은 곳곳에 널렸다. 그 순간들을 굳이 헤집어 자신을 미워하는 제자리걸음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수 좀 할 수 있고, 사람인 이상 미워질 수도 있다. 괜찮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까. 남보다 본인을 먼저 챙긴다고 나쁜 게 아니다. 까짓 그 모습 또한 스스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