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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민 Jul 25. 2024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

미술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

일러두기

이 글은 작가가 드리미학교 선택활동 <명보극장> 수업에서 작성한 미술에 대한 고찰입니다.

토론 및 비판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토론하였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먼저 미술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미술에는 두 가지의 정의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미술(fine arts)은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미적 표현 일체를 뜻하며, 좁은 의미의 미술(visual arts)은 관례상 보통 건축·회화·조각·공예 같은 분야들을 포함한다. 우선 좁은 의미에서의 미술에 대해서는 관례상으로 정해진 예시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접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정의였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미술에 대한 정의는 우리의 토론을 뜨거움과 전율로 가득 채우기에 적합한 정의였다. 

 여기서 넓은 의미에서의 미술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미적 표현 일체"를 뜻한다. 우선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약간의 한계점을 두자면 여기서 모든 것이란 가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의 모든 것이라고 하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억지를 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파헤쳐할 과제는 미적 표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미적 표현'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갑론을박을 펼쳐나갔다. 

 우리는 진리에 보다 근접하기 위해서 변증법적으로 접근하였다. 모든 것이 모두 미술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인간이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일체의 것에게 물리적 변화를 가하지 않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 모든 물체가 존재적으로 미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어떠한 가시적 일체에게 새로운 물리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을 미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미술의 소재는 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 미술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일체의 것에게 미적 표현을 위해 물리적인 변화를 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미적 표현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인간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의지를 표현하지 않는 것 또한 미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의 논리를 펼쳐나갔다. 나의 논리는 앞서 말했듯 이러하였다. 미적표현 그러니까 표현이라는 것은 어떠한 물리적 변화를 주어야만 표현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떠한 물체의 일체에게 내 의지로써 물리적 변화를 줄 수 있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로써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행하지 않음으로써 그게 미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일체의 것이 누군가의 의도로써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에는 한 가지 모순점이 존재하였다. 우리의 논제는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것이었지만, 나의 논리에는 “인간의 의지로써 행할 수 있는”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명제에서 오류를 발견하여 변증법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변증법은 합을 이루어 하나의 진리에 보다 가까운 명제를 탄생시켰다. 우리의 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의지로써 행할 수 있는 모든 물체에 대한 시각적인 미적 표현 일체는 미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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