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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민 Jul 25. 2024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

파커팔머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

  파커팔머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찝찝함을 느끼게 한다.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들을 부정당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진리들로 채워 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겨운 일인지 모른다. 앎의 원천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 영성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이 책은 기독교 대안학교에 다니는 우리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다 맞는 말 같고, 다 옳은 주장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내용에 빠져든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개념이 그 근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책은 객관적인 지식을 부정에 가깝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것만이 진리가 되던 우리의 배움에 새로운 틀을 끼워 넣어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배움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지적 유희가 아닌,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은 말이다. 앎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결국 사랑이 중심이 된 앎을 얻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를 던져놓는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는 왜 학습해 왔는가? 이러한 류의 질문들에는 우리가 더욱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함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나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추구가 되어야 함에 여지없이 동의할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 안에서 생겨났고 또 역동적으로 존재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사실상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함이라는 답변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배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배움에 대한 책임이란 진리에 순종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라는 책을 교육 철학으로 삼은 드리미학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종종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토록 공동체에 대해 배우고, 영성에 대해 배우고, 진리에 대해 배우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존적 논의를 수도 없이 거친 드리미 학생들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우리는 한 몸 된 지체이며 서로를 사랑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은커녕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수군수군 대기 십상이다. 우리는 각자가 죄인되었기에 서로를 욕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드리미학교 학생은 없을 텐데도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입술로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며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을 선뜻 살아내지 못하는 것도 진리에 순종하지 못함이다. 드리미학교 가치기초소양 수업에서는 이것을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결국 정직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정직한 것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정직의 가치는 더욱 상위 차원의 개념이다. 정직이란 그것이 진리에 순종함에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에게 진리에 순종할 것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진리에 순종함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이 책을 읽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저자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에서 어떤 영성을 훈련해야 하며, 어떻게 진리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훈련을 이어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음이 우리에게 찝찝함을 가져다준다고 언급한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다소 찝찝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책임과 순종이란 사랑에서 발원해야 함을 이 책은 요구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것이 찝찝하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에서 발원하는 지식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이 책을 선물해 준 2기 고유석 학생은 책 여지에 짧은 글을 남겨 주었다. 거기에는 “너의 배움의 삶은 어떤지, 어디로부터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이 책을 통해 고민해 보길 바라"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장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고유석 학생은 나에게 ‘어디’로부터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특정 장소로부터 대상으로 향하는 배움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진리의 장소에서 그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에게로 향하는 배움의 삶을 살 것이라는 다짐으로 답하고 싶다. 결국 이것은 이 책이 유일하게 부정할 수 없는 도그마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 같다. 주관성을 요구하는 내용의 책이 던지는 객관성을 가진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가르치는 자의 영성과 배우는 자의 영성이 모두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리가 실천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음 또한 우리 게 지적 유희로 끝나는 결과를 가져다준다면 그것은 너무나 암울한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 진리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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