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아마 빠른 시일 내 용의자가 잡힐 겁니다.”
“설마, 거기까지 알아본 거야?”
놀란 가인이 수현을 바라봤다.
방울을 흔들고 쌀알을 흩트리며 접신하는 무속인 보다 카리스마 있는 탐정이 어울리는 수현의 자신만만한 눈빛이 오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명석한 두뇌와 운동으로 다져진 강철체력, 냉정한 사리판단이 솔직히 복지재단 비서로 썩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말을 아낀 수현이 찻잔을 들었다. 가인도 더는 묻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있어 깊이 파고들만큼 지경하의 죽음이 중요하진 않았으니까.
“안도영은?”
“부모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부친은 10년 전 사망했습니다. 모친은 재혼 후 강원도에 거주 중이고 열 살 터울의 여동생은 현재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열 살 터울이면, 21살? 일본에 있다고?”
“네. 올여름 귀국해 철원 모친 집에서 지내다 한 달 후 출국했습니다.”
AI 같은 음성으로 감정 없이 읊조리던 수현이 가인 앞에 사진을 내밀었다. 곧 가인에게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본 여자가 아니야.”
사진 속 안도영의 동생은 단발머리에 통통하고 신장이 작은 데다 안도영과 달리 동양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점점 확신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왕래하는 친인척은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1년간 싱가포르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사이 안도영은 총 6번 한국에 왔었습니다.”
“뭐?”
이어진 수현의 보고에 가인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가 아는 바, 안도영이 출국한 이후 영원은 그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휴가조차 없었던 안도영의 근무조건에 영원은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입국 시기는 일정하지 않았고 보통 일주일 정도 머물다 출국했습니다. 다만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안도영에 대한 놀라운 반전이었다.
가면은 자신만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그녀의 주장이 납득되는 웃기고도 슬픈 현실이기도 했다.
“수고했어. 일찍 알려줘서 고마워.”
가인이 일어나자 수현이 따라 일어섰다.
“대표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먼저 현관으로 걸음을 옮기던 가인이 돌아섰다.
“최근 수상한 사람이나 혹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수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며칠 전 가인의 집 담벼락 뒤에서 마주친 괴한 때문이었다.
“수상한 사람……? 없었는데, 왜?”
“평창동 일대에 이런 저택만 터는 도둑이 극성이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조심하셔야겠습니다.”
“그래? 알겠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잠시 후, 대문 밖을 나온 수현이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를 둘러본 후 동네를 벗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 검은 가죽재킷에 검은 장갑을 착용한 괴한이었다.
수현이 동네를 벗어나자 남자는 가인 집 담벼락을 따라 쪽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수현이 다녀간 후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뉴스속보가 떴다.
그녀의 예측대로 배우 지경하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체포된 거였다.
용의자는 24살 배모 씨로 토요일 새벽 6시경 지 씨 빌라에 침입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지 씨 자택에 침입한 건 사실이나 살해 혐의는 완강하게 부인하는 중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으며 지경하에게 겁을 주고 두어 달간 활동할 수 없게 상해를 입혀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더불어 배 씨에게 범죄를 사주한 장본인은 배우 문송하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문 씨는 이미 캐스팅이 끝난 작품에 별안간 투입된 지경하로 인해 배역을 빼앗겼고 결국 작품에서 하차하며 앙금이 깊어졌다고 했다. 이후 그녀는 배 씨를 고용해 지 씨가 작품을 하지 못하도록 폭행과 협박을 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배 씨는 가택 침입 당시 지경하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안 곳곳 배 씨의 족적이 즐비한 데다 명품 가방 및 귀금속, 수백만 원의 현금 등을 훔쳐 달아난 것이 밝혀지며 그가 꽤 오랜 시간 빌라에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숨진 지 씨의 몸 곳곳에서 배 씨 지문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되자 경찰은 명백한 증거를 찾기 위해 정밀 현장감식과 함께 배 씨를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는 목요일 저녁 9시, 속보를 통해 일제히 전파를 탔다.
그런 가운데 귀 기울여 뉴스를 지켜보는 한 커플이 있었다. 도영과 그 옆에 꼭 붙어 앉은 영원이었다.
두 사람은 영원의 집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주의 깊게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드디어 범인이 잡혔네. 나쁜 놈.”
영원이 캔맥주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범인인지 단정할 순 없지. 좀 이상하잖아.”
“처음에는 상해만 입히려고 들어갔다가 돈에 눈이 멀어 죽인 거 아닐까? 돈 되는 건 다 훔쳐갔다잖아.”
그럴싸한 영원의 추리에 도영이 성의 없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정말 돈에 눈이 멀었다면 사람만 죽이면 그만이지, 저렇게 엽기적인 행각을 벌일 여유는 없었을 것 같아서.”
도영은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 지경하 살인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대중은 연예인이 살해되었다는 사실보다 범인이 그녀에게 저지른 끔찍한 살인행각에 더욱 경악했었다.
도영의 관점이 금전을 노린 일반적 살인이 아닌 ‘기괴한 살인행각’에 머무른 이유였다.
도영의 추측에 tv를 보고 있던 영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정말 그러네! 경찰도 알고 있겠지?”
“그럼. 근데 또 저 배 씨라는 작자가 경찰을 교란시키기 위해 일부러 금품을 훔친 건지도 모르니까.”
탐정 같은 도영의 추리에 캔맥주를 내려놓은 영원이 물개박수를 쳤다.
“너, 탐정해도 되겠다. 언제 이렇게 컸어?”
“영원이 네가 키워줬잖아.”
“에잇! 농담한 건데, 그걸 받으면 어떡해!”
어긋난 티키타카에 영원이 미간을 찡그리자 도영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실이니까. 분노만 가득했던 내 인생을 희석시켜 줬잖아. 하영원이.”
“뭐, 내 덕분이라니까 기분은 좋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았던 날카로운 도영과 밝은 에너지를 품고 있던 영원이 처음부터 이렇게 잘 맞은 건 아니었다. 서로가 답답하다며 돌아서기 일쑤였으니까.
그런 가운데 양지(陽地)를 먼저 받아들인 건 도영이었다. 그가 처음 느껴본 공감과 따사로움이었고 영원은 기꺼이 그녀의 볕을 그에게 내주었다.
“비록 일 년이지만 싱가포르에서 진짜 열심히 일하면서 터 닦아놨어.”
“한국에는 정말 미련 없는 거야?”
“어.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한국 들어올 때 보면 되니까. 우리 싱가포르에서 멋지게 시작해 보자.”
깍지를 끼는 도영에 영원이 지그시 그의 눈을 바라봤다. 안쓰러움과 대견함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네 안에 그 화산 같던 분노는 전부 희석된 거야?”
“아니. 그럴 순 없지. 상처와 기억은 묻어두는 거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그럼, 묻어두는 걸로 끝낸다는 의미지?”
“그러려고. 너 만나기 전에는 복수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생겼거든.”
살짝 눈물이 고인 영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준 언니 정원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우리가 이렇게 연인이 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연애하려고 만난 건 아니었으니까.”
지난날을 회상하듯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참! 우리 결혼식은 한국에서 하는 거지?”
“그럼. 싱가포르에서 하려면 돈 많이 들어.”
도영의 진담 섞인 농담에 영원이 웃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다. 도영도 그리고 영원도 바닥부터 시작한 인생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나 싱가포르에 간다고 하면 가인이가 많이 섭섭해할 것 같아.”
“그새 정들었어?”
“무려 6년이잖아. 좋든 싫든 가인이는 혼자야.”
“내가 섭섭해지려고 하네.”
표정이 굳은 도영이 맥주를 비우고는 빈 캔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마음 아니니까 섭섭해하지 마. 근데…….”
살짝 눈치를 엿본 영원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너는 왜 가인이를 싫어해?”
“싫어하는 건 아니야.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지난번에도 만나기 싫다고 했잖아.”
“영원이 너는 왜 이가인한테 정이 가는데?”
도영의 반문에 영원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 또한 처음 얼마간은 가인을 무척 어려워하고 불편해했으니까. 마치 태생부터 감정이 없었을 것 같은 이가인에 살가운 영원조차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좀 안쓰러웠어. 마치 공격받은 고슴도치처럼 먼저 가시를 세웠거든. 나도 어려워하긴 했지만 가인이 스스로 혼자가 익숙해 보이는 건 그만큼 상처가 깊고 크다는 증거였으니까.”
도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공감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런데 같이 일하다 보니까 재단운영을 진짜 투명하게 하더라고. 돈이 많으면 대게 더 욕심을 부리잖아. 근데 가인이는 운영도 적극적인 데다 사비를 들여서까지 후원 목표액을 채우더라.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재단운영은 인정해. 그리고 영원이 너한테 잘해주는 것도.”
가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의외라는 듯 영원이 도영을 바라봤다.
“그렇다니까. 막상 친해지면 잘 챙겨주고 따뜻해. 비서 수현이만 봐도 가인이가 얼마나 많이 챙겨주는데.”
“그래?”
말투가 성의 없는 경청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너는 가인이가 왜 불편해?”
“어두워서.”
“그럼 더 안쓰러워 보이지 않아?”
“그런 장르의 어두움이 아닌 것 같아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도영의 말에 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한동안 굳어있던 도영이 갑자기 웃음을 보였다.
“누가 알아? 이가인도 곧 결혼할지. 관심 있는 사람 있다며.”
“있긴 했지. 의료봉사 왔던 사람인데 그쪽이 가인이한테 영 관심이 없더라고.”
“부담스러웠나?”
남의 연애사에 큰 관심은 없다는 듯 도영이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그것보다 가인이가 스스로를 너무 감춘 것 같아.”
“아, 밖에서 가면 쓰는 사람들?”
“나쁘게 말하면 그렇지. 좋게 말하면 사회생활 중 하나이고.”
도영이 가인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영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원은 자리에 없는 가인을 감싸주었다. 가인을 위해서라기보다 도영을 위해서였다.
“맞아. 가면은 양면성이 있지. 그런데 하필 남자가 그걸 알아봤구나.”
“그런 셈이지.”
“이가인이 제대로 된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긴 했네.”
“응. 그래서 쉽게 포기 안 할 것 같아.”
“그래야겠지. 다신 없을 기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