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나요?

여러 길로 이루어진 인생

by 진지니



2018년 5월 20일.


오늘도 변함없는 야근을 마치고 남친(지금의 남편)과 일산으로 데이트를 갔다.


보통 커플이라면 연락도 자주하고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겠지만, 우리는 만난 지 4년째, 더군다나 최근 3년 동안에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야근에 지쳐 하루에 주고받는 톡 세 통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섭섭할 게 없는 것이, 눈 뜬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자기 전 잠깐의 시간에는 지쳐서 각자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모자랐다. 이렇게 나의 20대는 매일 반복적인 루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터널처럼.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데이트를 했다.

오랜만에 야근을 하지 않은 금요일, 우리는 밤에 일산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당시에 그 곳에서 어떤 데이트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 쌩쌩 달렸던 기억이 있다.

드라이브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긴 터널을 통과하는 데, 문뜩 한 길로만 쭉 뻗은 뻥 뚫린 터널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길이 산길, 바닷길, 흙길 등 수많은 길이 있는데 이렇게 하나의 길로만 가면 재미가 없듯이, 인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러면서 갑자기 핸드백에 있는 수첩을 꺼내 지금의 내 느낌과 감정,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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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나의 20대 마지막 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해 말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 많은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만, 그런 이상적인 변화는 없었다. 같이 한 집에 사는 것이 처음에는 새롭게 느껴졌지만, 그조차 금방 적응이 되었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회사생활이 변함이 없기에 기계처럼 금요일만 기다리는 그전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점이라하면 내가 하는 모든 얘기들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용기를 주는 나의 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정답 같은 길을 뒤로 한 채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어느 신혼부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파양하면서 나에게 온 강아지, 이름은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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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한 지 4년째 되는 해에 서울에서 보내는 나의 일상이 익숙하고 당연한 줄만 알았는데, 예기치 못한 새로운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미국행이였다.


남편 회사에서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하고 있으며 초기 멤버로 남편에게 가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남편은 한 곳에 안주하는 성격으로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하는 모험심이 없는 사람이여서 미국으로 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나 또한 '무슨 미국이야' 라는 생각으로 그냥 흘려들었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이 얘기를 주변에 나와 같이 고생하는 회사 친구들에게 말을 하니, 인생에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이니 무조건 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이에 생각이 바뀌어 남편과 다시 진지하게 상의해보니, 그때의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두 달 만에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가족 '감자'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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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살면서 생각해보니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라고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준비, 직장인..

다시 생각해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주부로 살며 여유로움을 느끼다 보니 처음으로 이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음 좋겠어'


나랑 같은 팀에서 고생한 친구 한 명과 오랜만에 보이스톡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잠시 말이 없다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라고 대답해 주는데 뭔가 뭉클함이 몰려왔고,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속한 팀에서 고인물이였고, 그 친구는 신입 때 같은 팀이였는데 다른 팀으로 3년 정도 발령이 났다가 다시 돌아온 케이스였다. 우리 팀은 회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팀 중 하나였다.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고 여러 팀들과 소통을 자주 해야 하며 업무 특성상 책임감이 큰 직무를 담당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일을 오래하다 보면 그런 부담감 때문인지 성격이 예민해지며 말이 없어진다.

그 친구는 같이 야근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너는 참 숨도 안 쉬고 일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 였다.

그런 나의 모습을 봐왔던 친구가 내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아무튼 이렇게 나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삶과 여유, 환경을 경험하며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물론 차가 없으면 집에서 꼼짝 못하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이러한 새로운 삶과 길을 나에게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결코 평온하다고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대로 계속 지내도 괜찮은걸까?'


라는 생각으로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고 있지만, 딱히 성과라는게 눈에 보이지 않아 항상 불안하고 뒤쳐지는 느낌이다.


'왜 나는 다시 돌아 올 수도 없는 이 시기를 맘 편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걸까?'


그래서 평소에 잘 보지도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브런치 스토리에 글도 쓰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6년 전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인생은 모르는거야' 이 말이 나의 회사 선배들을 봤을 때 해당이 안되는 말인줄 알았고 나는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인생은 모르는거다.' 내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또 다른 길이 생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곳으로 이동 할 수도 있다.


2024년, 이렇게 시작된 미국을 걷고 있는 나의 길에서 나의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내 인생에서 다음은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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