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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이 Feb 26. 2024

불량 식품

불량한 사람이 먹는 게 아니랍니다.

어릴 적에 불량과자를 좋아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옛날 과자인데 그땐 그게 맛있었다. 나의 유치원 시절에는 성탄절이 되면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과자 선물 세트였다. 지금으로선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땐 그랬다. 지금처럼 과자 종류도 사탕, 초콜릿 종류도 많지 않았다.

플라스틱 산타 양말 모양(사실은 빨간색 산타 구두 모양인 걸로 기억한다)에 다양한 과자가 가득 담겨 있고 그 통 전체를 귤 망같이 생긴 빨간색 망사로 씌운 과자 세트가 인기였다. 산타 모양 과자 보다 더 큰 네모 반듯한 통에 다양한 과자가 담겨 있는 선물 세트도 있었다. 그 박스 전체를 과자 회사의 로고와 알록달록 이미지가 그려진 포장지를 뜯으면 네모 상자 안에는 온통 과자가 담겨 있었다. 과자만 있는 그 상자를 한번 상상해 보라. 어찌 좋지 않겠는가. 먹고 사라지는 것일지라도.

출처:광주노블리즈

불량 과자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내가 좋아하던 불량 과자는 길고 동그란 모양을 한 일명 쫄쫄이었다. 겉은 연한 오렌지색이지만 그 안은 분홍색의 다른 색 쫄쫄이가 또 들어 있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쫄쫄이가 좋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쫄깃한 식감 때문이다.

일렬종대로 붙어있는 이 친구들을 하나씩 찢으면 연필보다 얇은 두께의 쫄쫄이가 여럿 탄생한다. 하나씩 찢은 친구들을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그건 하수들이 하는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얇은 쫄쫄이를 연탄구멍으로 조심조심 내려보낸 뒤 살아 돌아온 것을 먹는 자가 고수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행여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글을 덧붙여본다. 50원, 100원하는 불량 식품을 사 먹던 시절 집게가 웬 말이겠는가. 달고나를 먹기 위해 가게 주인이 국자에 설탕을 한 숟가락 얹어주면 연탄불에 직접 해 먹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먹고 난 그 국자들은 물이 담긴 통에 다 같이 담긴다. 나무젓가락과 함께. 그러면 달고나를 먹을 다음 친구는 담긴 통의 국자 하나와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고 자신의 달고나를 만들러 가던 시절이다. 심지어 아이들이 연탄불에 코를 처박고 자신의 군것질거리를 직접 불에다 굽던 시절인 것을.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땐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니 왠지 내가 전쟁을 겪었을 것 같겠지만 알고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저 지금이 아닌 옛날 일일뿐.  

쫄쫄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고수인 나는 언제나 그냥 먹기를 꺼려했다. 고수들이 먹는 방식은 이러했다. 오렌지색의 가늘고 긴 친구를 연탄구멍에 닿지 않게 잘 내려보냈다 올라오면 성공이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뜨거워지는 열기를 참는 것은 기본이고 작은 연탄구멍 180도 표면 어디에도 닿지 않게 해야 하는 일임을.  연탄불에 직접 닿게 되면 까맣게 타는 것은 기본이고 내 입으로 그 검은 연탄재가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집중에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조심히 내려갔다 올라온 친구는 예쁜 오렌지 색은 간데없고 거무티티해진 색깔에 올록볼록하게 살갗이 도드라져있다. 그 순간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이때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이 과정을 잊게 되면 큰 변을 당한다. 잊지 말고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바로 이것이다. 거무티티해진 이 친구를 찰싹찰싹 두들겨준 후 똥꼬 입술을 만들어 후하고 여러 번 불어주면 표면에 뭍은 연탄재는 날아가고 먹기 좋은 온도로 준비가 된다. 이제야 내 입으로 골인이다. 질겅질겅 씹고 있는 미소 옆에는 언제나 시커먼 자국들이 함께 한다. 고수들만이 갖게 되는 영광의 자국이라 말하겠다.

출처: 키레이세상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과자가 다시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달고나도 다시 나오고 쫀드기, 아폴로도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내 사랑 쫄쫄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 젤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가진 젤리가 좋았다. 그렇게 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쫀득함을 그리고 그 쫀득함을 잊을 수 없어 젤리 사랑으로 향하게 된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직도 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연탄재의 텁텁함이 함께했던 그 쫄깃함을 잊을 수는 없다. 어찌 첫사랑을 잊을 수 있겠는가. 마음속 어디에는 쫄쫄이에 대한 그리움이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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