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연구소
2025년 11월 26일
초라함에 대하여
오늘은 초라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아직 가진 게 없을 때, 무언가를 내려놓게 될 때, 나의 초라함을 마주 할 때의 이야기이다.
나의 전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가진 게 없을 때 많은 걸 가졌다 느끼게 해 주었다. 부자가 된 느낌, 구름을 가진, 맑은 하늘을 가진, 풍경과 바람을 가진 느낌, 가진 게 없지만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세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정말 많이, 그분이 결혼을 말하시기에, 결혼 까지도 생각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건 다 해주고 싶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해주고 싶었다. 결국 돈이 많이 필요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도 열심히 하고, 부수입원에 대해 찾아보고, 그 당시 내 세상에서, 내가 아는 모든 걸 시도해 보았다. 그때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너무 간절히 바라면 고통으로 다가온다 했던가, 결핍으로 다가온다 했던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렀다.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도 않았다. 나의 수입, 나의 정신, 모든 것들이 참 고통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은, 다른 이들은 벌써 결혼도 하고, 집도 있고, 정말 행복하게 사는 듯했다. 그에 비해 나는 모아놓은 게 없고, 이제 모으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으며 얼마나 준비해야 준비되는지 기준도 없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나의 꿈은 시작하지도 못하였다. 그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직장생활을 할 뿐이었다.
또 집안을 탓하기도 시작하였다. 우리 집안은 정말 좋은 집이다. 다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대신 빚을 지었다. 참 마음씨 좋은 부모님, 하지만 나에게는 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내가 갚아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만든 빚도 아니며,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하지만 짐으로 계속 나를 조여왔다. 이런 나의 걱정도 그분께는 드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 빚이 아니라서, 부모님은 신경 쓰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자식들 마음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또한 이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은 좋은 기억이 없다. 돈이 없어 매일 싸우던 부모님. 왜 태어났냐 내게 말하던 술 취한 아버지(분명 실수였다.) 난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결핍에 살아왔다. 내 자식들에게도 이런 세상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이번 이별을 계기로 나의 불안과 결핍을 마주하였다.
정말 초라하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가진 게 없다는 건, 무엇이던 시작하기 좋은 상태이다. 또한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그분이 고통스러워질까 봐, 우리의 끝이 정말 안 좋게 끝날까 봐, 그때의 초라함과 기다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별을 말했다. 조금이라도 웃으며 안녕하고 싶었다. 참 이것조차 웃기며 초라하다
이별을 말하고 많은 분들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이유로 이별하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건지 위로가 되었다. 우리 사는 세상 비슷하구나 하고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와 바뀐 건 많이 없다. 그래도 시작을 하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있다. 공모전에도 꾸준히 제출하고, sns도 키워가며 많은 작가분들, 예술인 분들과 협업하려 한다. 조만간 작은 책도 출간한다. 작게나마 시작하고 있다. 초라해지니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원하는 꿈을 찾게 되었다. 또한 시작하게 되었다.
초라하다. 고통스러운 감정이지만 다른 말로는 새로운 시작, 설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의 초라함은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의 초라함은 내 세상을 바꿔주었다. 또한 내가 살아온 세상을 한번 더 돌아보는 계기였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도 초라한 감정이 한 번쯤은 올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빠르게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다른 시작, 새로운 만남, 새로운 세상으로 당신의 세상은 다가올 것이다. 밝게 맞이하길 바란다. 초라하지만 당신은 오늘을 가졌다. 행복한 오늘을 보낸다면 결국 당신의 초라함은, 당신의 고통은 행복으로 느껴질 것이다. 구원받을 것이다.
초라함은 새로운 시작 전 다가오는 하나의 선물이다.
초라함을 고통으로 바라보면 잠기거나 , 회피할 것이다. 초라함을 행복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시작과 설렘으로 다가올 것이다. 부족함은 고통이 아니다 새로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다.
여러분의 초라함을 마주하고 인정하길 바란다. 그때 초라함은 더 이상 초라함이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분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결핍과 고통을 마주했다. 또한 이제 내게는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으로 설레는 삶을 살고 있다. 또한 행복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사랑이다.
오늘의 감정은 초라함, 초라함은 새로운 행복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오늘의 감정은 행복과 고통, 그 사이로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