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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04. 2023

D+1 착한 고양이는 잘 먹고 잘 싸는 고양이지요

오늘은 낮부터 하루종일 뜨개질 할 거리를 들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 거실방과 옷방을 모두 방문해본 송이가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있을 수 있을까 고민했고, 최고의 룸메이트는 집에 없는 룸메이트라는 말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내가 집에 있는 것보다 없을 때 더 편하게 지낼 것 같아서, 반나절 동안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오기로 했다.


오늘 간 카페는 유기묘 3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카페인, 카페 무네였다.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넉넉한 공간과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불안해지지 않는 몇 안되는 카페이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뜨개질을 하는데, 단골 손님이 오셔서 자리를 잡았다.


바로 삼냥이 중 둘째인 아미였다. 아미는 무척 소심한 성격이라 가까이는 오지 않고,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뜨개실이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을 한참을 구경하다 가곤 한다. 실이 휙휙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사냥을 하고 싶어할 만도 한데, 정작 실을 던져주면 영 시큰둥해한다. 원래 아미는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 위에 눌러앉아서 뜨개질을 구경하는데, 오늘은 다른 가방을 들고 가서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아미가 뜨개질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 직원 분에게 말씀드렸더니, 직원분이 "맞아요. 정말 사람처럼 앉아서 보죠~"라고 하셨다. 아미의 세상에서 나는 화려한 공연을 하는 곡예사였다. 양털 냄새가 나는 실을 휘릭 감고 푸는 묘기를 아미는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나는 최대한 의젓하게 모른 척 하려고 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미가 너무 귀여워 잔뜩 의식하며 뜨개질을 했다. 그런 내가 부담스러웠는 지 아미는 유유히 다른 재미를 찾아 자리를 떴다.




저녁을 먹고 병원에 들렸다가 집에 왔다. 송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문을 살짝 열어놓았었는데, 아쉽게도 문은 그대로였다. 옷장에 들어가서 송이가 밥은 잘 먹었는지, 물은 잘 마셨는지, 화장실은 잘 다녀왔는지 확인했다. 옷장의 옷 사이를 살포시 열어 송이가 자리에 있는 지 확인했는데, 송이는 도망가지 않고 '왜.'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비록 애인은 경계하지만 나는 크게 경계하지는 않는 것 같아보였다.


눈을 마주쳐도 놀라지 않기 단계까지 간 김에, 사진도 한번 찍어보았다. 다행히 송이는 카메라 소리를 듣고 불안해하거나, 렌즈를 보고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냥 '뭐.'라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의 소원은 나와 눈을 마주친 송이가 도망가지 않는 것이었는데, 사진까지 찍게 되다니! 나도 이제 드디어 예쁜 송이 사진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송이와 형성된 라포에 감격하던 중, 갑자기 고약한 똥 냄새가 났다.


설마? 옷 사이에 똥을 싼 건가? 머리가 아득해졌다. 화장실을 뒤졌을 때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는데? 급하게 옷장에 걸린 옷들을 전부 빼냈다. 다행히 옷에는 똥이 묻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 이 똥냄새는 뭐지? 하고 옷장 바닥을 보았다. 답이 거기 있었다. 그렇게 난 말로만 듣던 똥스키를 마주했다.


똥스키라는 이름에 비해 상태는 그리 암울하지 않았다. 때 마침 숨숨집으로 도망간 송이 덕분에 옷장 바닥에 묻은 똥자국들을 편하게 치울 수 있었다. 어제 유유히 옷장 속에 걸어들어가던 것과 달리 정신없이 뛰다 숨숨집에 쏙 숨어버린 송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드디어 숨숨집을 사용해줬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예비 숨숨집 2호를 검색했는데, 걱정을 한숨 덜 수 있었다.


고양이는 낯선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긴장한다고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다. 송이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송이야 괜찮아, 엄마가 미안해, 얼른 치울께, 송이야 미안해.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의 조합을 계속 뱉었다. 송이가 조금이나마 덜 불안하길, 간절히 비는 나만의 주기도문이었다.



나의 바람과 달리 송이는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송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는데 겁에 질린 아기고양이의 눈빛이라서 마음 한켠이 짠했다. 커다란 숨숨집에서 송이는 가장 안쪽 구석에 숨어있었다. 숨숨집 속 어둠을 간절히 붙잡고 송이는 나의 동태를 살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능한 다정한 목소리로 미안해를 반복하는 것 뿐이었다.


이후 송이의 상태를 계속 체크했다. 열심히 먹고, 푸짐히 싸고, 물도 잘 마신 어제 달리 송이는 하루종일 먹은 것이 거의 없었다. 한 그릇을 다 비워냈던 참치캔도 오늘은 거의 입대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자리를 비키면 다시 옷장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옷장에서의 기억이 너무 무서웠던지 송이는 한참동안 숨숨집에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송이가 걱정되어 구조자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구조자님이 어제 밤에 활동했으니 오늘도 밤이 될 때까지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저녁부터 밤까지 나는 하염없이 또 기다렸다.


밤이 오길 기다리면서 구조자님에게 고민하던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사료와 모래를 지원해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앞으로는 내가 감당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애초에 임시보호를 시작할 때부터 감안하던 부분이었는데, 구조자님의 반응은 예상 외었다. 내게 감사하다고 하셨고, 그 말은 내가 지금까지 접한 '감사합니다' 라는 문장 중 가장 가슴이 쓰린 말이었다.


구조자님은 매번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셨다. 구조자님에게 송이를 임시보호를 하게 될 집을 확인해보시라고 한 것도, 그리고 많은 것들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한 일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임시보호자라면 당연히 지켜야할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임시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나의 선택이었으며, 그렇기에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구조자님의 감사하다는 문장에 층층히 쌓였을 눈물이 나의 마음을 적셨다.


구조자님은 나에게 '좋은' 임시보호자라고 하셨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선하다는 걸 뜻한데, 나는 선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임시보호자로서 지켜야할 것들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한참 동안 '좋은'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내가 지킨 임보자로서의 기본적인 규칙과 기존에 있었을 사람들의 행동을 저울에 놓아보았다. '좋은'이라는 단어만큼 기울어진 저울의 각도만큼 구조자님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 그 모든 사건들마다 세상이 얼마나 많이 뒤집혔을까, 또 뒤집힌 마음을 아가들을 위해 다시 정갈히 가다듬을 때 마음은 어떠셨을까,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된 지진과 붕괴를 어떻게 견디셨을까. 구조자님의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으로 그동안 지각변동으로 겹겹히 쌓였을 마음의 지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캣맘충'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한국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쉽지 않다. '사람의 삶이나 챙겨'라는 냉소적인 시선들이 쌓아올린 벽을 넘어,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캣맘충'이라고 불리는 죄인이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이 유기묘와 유기견을 구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길고양이와 유기견들을 구조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심하다' 혹은 '바보 같이 착하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다. 쉬지 않는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또 다른 생을 위해 다시 일어나는 사랑보다 더 강한 마음이 있을까. 연대보다 혐오를 더 자주 보는 이 사회에서 꺽이지 않고 사랑을 지켜나가는 수많은 구조자분들과 활동가분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희망을 지키는 진짜 영웅이다.




잔잔히 책을 읽으며 뜨개질을 하다보니, 어느 새 밤이 되었다. 송이는 그 사이 마음이 편해졌는지 다시 옷장에 들어가 있었다. 축축해진 사료와 물그릇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보고서야 송이가 조금이나 뭘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 모래 두 알이 떨어져있었다.


설마 화장실을 쓴 걸까? 기대에 잔뜩 부풀어 모래를 뒤졌다. 커다란 감자를 하나 건졌다.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 본 고양이 감자였다. 이후 계속해서 모래를 뒤지며 남은 감자들을 캤다. 아쉽게도 대변을 보지는 않았지만 저번처럼 불편해서 화장실을 못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 송이가 마음 편히 화장실을 못 쓰는 것이었는데, 큰 과제를 마쳤다.


그렇게 하나씩 해 나가는 거겠지. 잘 먹고, 잘 싸고, 잘 노는 고양이가 되는 그날까지, 송이야 우리 같이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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