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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04. 2023

D+3 나는 송이 엄마니까!

나는 매일 하루에 타로카드를 1장씩 뽑아 그날의 운세를 본다. 정확히는 밤 12시가 되면 타로카드 어플이 자동으로 뽑아준다가 맞는 말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무 낭만 없지 않은 가. 디지털 세상의 힘을 빌린 오늘의 운세는 전차카드였다. 승리를 거두고 성으로 복귀하는 전차를 그린 카드를 보고, 왠지 오늘은 송이가 똥을 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집사에게 우리 아이가 잘 먹고 잘 싸는 것보다 더 큰 성공이 있으랴.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송이 방으로 향했다.



세상에! 송이가 밥을 남기지 않고 비운 것이었다. 건사료는 늘 1/3 정도는 남기기에 양을 조금 줄여봤는데, 송이에게 딱 맞는 양이었나 보다.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는 송이를 위해 참치에 약을 타서, 송이가 잘 먹을까 걱정했는데 참치도 씩씩하게 다 비웠다. 전날 방에 자꾸 들락날락거려서 송이가 밤에 불안해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물그릇을 갈아주고 모래를 캐는데 처음으로 감자가 아닌 다른 것이 모래 속에서 나왔다. 전에 똥스키를 탔었기 때문에 오늘 송이의 변 상태가 어떤지가 관건인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집에 온 후로 3일 동안 똥을 싸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송이의 배변상태가 어떤 지에 따라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도 결정할 수 있었다. 혹시나 내가 줬던 참치캔에 문제가 있었으면 어떡하지? 옷장이 너무 먼지가 가득해서 송이한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진 않을까. 갖은 고민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는 걱정이 무색하도록 건강한 똥이 있었다.


사실 고양이를 키워본 것은 처음이라 고양이 똥을 마주하면 어떡하지에 대해 나름대로 걱정을 했었다. 이 전에 길을 가다가 실수로 고양이 똥을 밟은 적이 있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독한 냄새가 나는 똥은 처음 봤다. 너무 냄새가 심해 헛구역질을 했었던 기억 때문에, 집 안에서 송이 똥냄새가 가득 차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했다. 다행히도 송이의 흔적에서는 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미리 사두었던 고양이 배변 봉투에 담아, 냄새가 새지 않도록 한 바퀴 돌리고, 새로 산 5L짜리 밀폐 쓰레기통에 버렸다.




오늘은 낮에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깁스를 한 채로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상담소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상담 선생님에게 온라인으로 상담받고 싶다고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편할 것 같았다. 추석 연휴에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일부러 잡은 약속이었는데, 유독 사람이 없는 지하철이 나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마음은 편하지만, 정상 사회에는 속하지 못한 채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런 삶의 종점은 어딜까 생각하던 중 역에 도착했다. 몇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내리며, 나의 삶도 어쩌면 그리 독특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미리 문자로 고양이 자랑을 해둔 덕에, 상담은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시향 하러 방산시장까지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그다음 주에 고양이를 데려왔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시지 않길 바랐다. 특별히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서, 주절주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돈에 대한 자기 통제력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아끼는 타로카드를 몇 개 팔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사실 상담 선생님께 늘어놓은 변명은 애인을 향한 변명이기도 했다. 애인 입장에서 송이의 존재는 대략 이랬다.


"아 근데, 나 이번에 고양이 임시보호하기로 했어"

"갑자기? 그런 이야기 없었잖아. 애는 언제 오는데?"

"내일!"


분명 잠에 들기 전까지는 1인 가구의 가장이었던 애인이 자고 일어나니 송이 엄마로 변해있는 상황이었다. 평소에 돈 관리를 잘 못하는 것 때문에 걱정이 큰 애인은 대체 무슨 돈으로 애를 데려오며, 어떻게 키울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 있는 타로카드를 팔아 용품비를 마련하고, 타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그리고 5만 원 이상 결제한 항목을 할부로 돌리기 - 애인이 보기에는 영 답이 없는 모양이었다.


놀란 애인을 다독이고자 고양이를 데려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보고 싶지 않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송이를 나를 위한 수단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능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가 그렇게 계산적으로 아이를 데려왔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애인의 왜 데려왔냐는 질문에 나의 답은 지나치게 뚜렷하게 존재했다.


나의 답은 이렇다. 동물을 키우면 나의 생활 습관이 생길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어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노는 자신을 발견하며, 삶에 새로운 요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SNS에 밤마다 '단기 임보'를 검색했다. 병원비가 없어서 입양은 못하고, 기한 없는 임시보호를 하자니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였다. 나의 두려움 사이에 유일한 선택지는 단기 임시보호였다. 어쩌면 고양이를 너무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서든 '키울 수 없다'라는 핑계를 피해 가고 남은 결과였다.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닌 동물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선을 세상에 베풀기 위해서라고도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며, 고양감에 잠기고 싶지는 않다. 다만 평소에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애인 덕택에 동물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관 정도는 갖고 있었고, 반려동물은 사람에게 애교떨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구조자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것도 할 일 없는 백수에서 '송이 엄마'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동물을 구조하고 임시보호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아이를 데려왔다. 나는 나 자신이 대단히 선하거나 커다란 가치관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송이를 데려오게 된 이유를 특별하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지금보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고 이를 위해 딱 맞는 해결책이 임시보호였다.


비록 시작은 이기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송이를 데려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한 몫했다. 특히 동물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서, 어떻게든 내가 먹을 밥을 굶어서라도 애를 키울 자신이 있었다. 비록 어제까지만 해도 돈을 물 쓰듯이 썼지만, 송이를 데려오면 송이 장난감 하나라도 더 사주고자 악착같이 돈을 아낄 나 자신이 보였다. 이를 확인하고자 집에서 가장 귀한 타로카드를 꺼냈고, 주저 없이 온라인 장터에 올렸다. 비록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우리 송이보다 중요한 물건은 없었다. 그렇게 수집하던 향수들도 치우고, 오랫동안 키우던 식물을 베란다에 내놓고, 또 많은 물건들을 치우며 송이 엄마가 될 준비를 마쳤다.


비록 애인한테는 내가 산 물건들의 값을 70%는 깎아 말하기는 했지만, 송이를 데려온 후로 삶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고 너무 졸릴 때, 오밤중에 옆집의 치킨 냄새가 내 방까지 넘어올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마법의 문장을 외운다. "나는 송이 엄마니까!"


나는 송이 엄마니까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송이는 그렇게 나를 공전하게 만든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누워 평소처럼 SNS을 했다. 송이의 입양 홍보를 위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는데, 트위터에 가보니 나와 비슷한 집사들과 견주들이 참 많았다. 추석이 되어서 예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는 걸 구경했다. 너무 귀여워서 집사들과 견주들의 계정도 둘러보았는데, 다들 자기 아이들의 예쁜 사진을 프로필과 배경에 걸어두고 있었다. 비록 우리 송이도 아직 구내염으로 인해서 꼬질꼬질하지만, 나도 우리 송이의 예쁜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겨우 찍은 대여섯 장의 사진을 뒤적이며 어떤 사진을 올릴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오래전 반려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패턴무늬의 사진이 생각났다. 아직 옷장 속에서 숨어있어서 그럴듯한 사진이 없는 상황에서, 송이 얼굴이 나온 부분만 오려서 패턴을 만들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뒤로 한참을 핸드폰을 만졌다. 깨진 액정 위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송이의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나갔다. 비록 아직 입가에 피가 묻어있지만,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은 이동장에서 찍은 사진뿐이어서 그 사진을 활용했다. 송이 얼굴만 예쁘게 크롭 하고, 치즈색 고양이의 매력을 극대화하고자 채도를 조금 올리고, 그리고 배경에 주황색을 칠했다. 아주 깜찍한 송이의 프로필 사진이 생겼다.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왜 집사들과 견주들이 자기 아이의 사진을 SNS에 올릴 때 하염없이 찬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비반려인이었을 때는 저렇게까지 예쁠까, 싶었는데 집사가 되어보니 나도 그러고 있었다. 송이의 예쁜 모습을 사방팔방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의젓하게 어른처럼 굴고 싶어서, 송이 SNS에만 조용히 올렸다. 묻지도 않은 친구들에게 송이 사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어른스러운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송이 사진을 SNS에 올리고 다시 살펴보는데,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업로드하고 나니 영락없이 평범한 반려동물 계정이 되어있었다. 한 번도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이제 겨우 송이를 만난 지 4일밖에 되지 않은 집사의 계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보통의 집사가 운영하는 그런 계정. 인생에서 나는 '보통의 존재' - 머리가 길고 남들처럼 화장을 하고,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르고, 소송에 휩싸여 변호사와 연락할 일이 없는 - 였던 적이 드물었기에 새삼스러웠다. 어디에 놓아도 불쾌하게 튀어 오른 존재가 아닌,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산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었다. 비록 온라인 상일뿐이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온기에 둘러싸인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고일어났는데 혹시나 싶어 송이 방에 가보았다. 세상에 그 사이에 밥을 다 먹었다! 아직 구내염으로 인해 많이 아플 텐데, 씩씩하게 잘 먹으며 견뎌주는 송이가 기특했다. 저녁밥을 다 먹은 지는 처음이라, 밥을 더 채워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어떡하지? 순간 고민에 빠졌다. 남들이 보면 세상 하찮은 고민이지만, 나한테는 무척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대부분의 결정을 구조자님에게 물어보고 하기 때문에, 나 홀로 송이에 대한 무언가를 결정 내리는 것이 처음이었다. 일단 구조자님이 밥을 잘 먹어야지 빨리 낫는다고 하셨으니까, 밥을 채워 넣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밥에 타주던 약은 어떡하지? 다행히 하루에 2번까지는 약을 먹어도 된다고 해서, 약도 조금 타 넣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하루에 3번 주는 거 아닌 가, 생각하며 따뜻하게 덥힌 참치가 놓인 그릇을 송이방에 놓았다.


오늘도 새벽이 되면 송이는 하루를 시작하겠지. 지금부터 시작될 송이의 하루가 가볍고, 즐겁고, 행복했으면 한다. 송이야 내일 아침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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