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자따봉 Oct 05. 2023

D+5 송이가 이불에 지도를 그렸다

늘 그렇듯이 평범한 집사의 아침이었다. 밥을 잘 먹었는지 확인하고 (✓), 화장실을 잘 갔는지 확인하고 (✓), 물을 잘 마셨는지 확인하고 (✓), 스크래쳐를 쓰거나 주변 탐색을 했는지까지 살펴보면 오전의 집사 업무는 끝난다. 혹시 더 할 일이 있나 방을 한 바퀴 둘러본 후에 침대에서 글을 쓸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불 위를 만져보니 축축했다. 축축한 촉감에 1차로 놀랐고, 그 뒤에 왜 축축한 지 생각하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고양이 오줌 냄새는 독하다니까 아닐 거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물 자국의 냄새를 맡았다. 부정할 수 없는 암모니아 냄새였다.


여태까지 화장실을 착실하게 잘 썼기 때문에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일단 침착하게 이불을 꺼내고 밑에 매트리스 커버나, 매트리스가 젖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이불에만 오줌이 묻어있었다. 이불을 세탁기에 돌려놓고 수습을 하면서 괜히 송이한테 한 마디 했다. "야 그래도 이불은 너무 하지 않냐?" 송이가 알아들을 리 없지만, 괜히 성질부린 것 같아서 후회했다. 하기야, 집사인 내가 잘 케어하지 못한 잘못이지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드르륵, 드르륵. 세탁기가 열심히 자기의 일을 하는 동안 송이가 왜 이불에 오줌을 쌌을지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모래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불에 오줌을 싼다고 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화장실 잘 썼는데? 그럼 스트레스가 문제인 걸까 하고 지난 나의 행동을 되짚어봤다. 변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순화를 시도하겠다고 아침에 오뎅꼬치로 송이를 쓰다듬은 것이었다.


아이고, 아직 길의 삶이 더 익숙한 송이에게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구나. 고양이 순화에 대해서 검색할 때마다 마음이 널을 뛰었는데, 나의 널뛰기에 송이까지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했다. 사실 송이의 순화를 결심하고 머릿속이 잔잔한 순간이 없었다. 고양이의 순화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집사의 글을 읽고 나면 마음에 불이 났다. 송이는 내년 4월에 이동해야 하는데, 그전까지 사람의 손에 익숙해져야 수월하게 입양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옷장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송이의 상황에서 오뎅꼬치가 무슨 말인가 싶기도 했다. 송이에게 당장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송이가 불편하더라도 송이의 순화를 위해서 조금 밀어붙여야 하는지 사이에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애인이 옷장 속에만 있는 송이를 보고, 옷장의 옷을 치워서 송이가 나오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직장인인 애인에게 '회사에 가기 싫어한다고 주말에도 회사 출근시키면 회사가 좋아지겠냐'라고 답했었다. 그렇게 답한 것이 무색하게도 빨리 순화된 송이를 보고 싶은 욕심과 송이의 상태 사이에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의 삶에 익숙하게 해 보겠다고 방의 불을 켰다가, 그래도 송이가 편한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방의 불을 다시 끄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익숙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무드등을 켜고, 어차피 불 켜면 아무것도 안 하는 송이니까 불을 끄기를 반복했다. 불을 켜고 끄는 것 하나에도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사람 키우는 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느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됐다. 나는 어릴 때 손이 유독 많이 가는 아이였기에, 하루에도 지옥과 천국을 몇 번씩 드나드셨겠구나 싶었다. 감상에 잠긴 것도 잠깐, 나는 그리 부모님에게 좋은 자식은 아니기에 괜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생각을 돌렸다. 그래, 난 아이는 절대 키우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으로 생각을 매듭지었다.



송이의 오줌 사태와는 별개로, 송이의 건강을 확인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송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 했다. 바로 옷장 속을 뒤져서, 송이의 얼굴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우선 옷 사이로 송이가 어디 있을지 찾기 시작했다. 옷을 사이에 두고 송이는 열심히 피했고 나는 그런 송이를 또 찾아냈다. 송이도 나도 이제 서로 익숙해져서, 송이는 내가 어디를 찾을지 알고 미리 반대편에 가서 숨고, 나는 그런 송이를 또 찾아내곤 한다. 숨고 찾기를 반복하다, 답답한 나머지 옷장의 옷을 뭉텅이로 들어 올렸다.


....? 옷이 통째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송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때다 싶어 잠금 화면에서 바로 카메라 앱을 열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송이가 카메라 소리에 움찔거렸다. 아차 싶었다. 이내 송이는 카메라 렌즈를 피해 시선을 피하고, 다시 쏙 숨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아해서 그랬어, 송이에게 속으로 변명을 해보았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그제야 무음 카메라 앱을 다운로드했다.





송이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에 대해서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 꾹 참다가는 방광염에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며 암담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송이에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줬나 하는 생각에, 송이가 지금 심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불안해졌다.


이럴 때 자주 쓰는 해결책이 바로 타로카드이다. 타로카드 커미션을 의뢰해서 받아볼까 하다가, 집에 놀고 있는 화이트 캣츠 타로카드가 생각이 났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타로카드인데, 평소에 집사인 친구들에게 펫 타로를 봐줄 때 쓰는 카드였다. 보통 펫 타로를 보면 크게 3가지 질문을 한다. 현재 고양이의 속마음, 고양이가 집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고양이가 집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본다.


예전에 부업으로 타로카드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에게 서비스로 펫 타로를 보아드리곤 했었다. 타로 리딩을 하면서 재밌었던 몇 안 되는 순간이었는데, 아이의 성격 따라 나오는 타로 결과에 집사분들은 울기도 하고, 한참을 웃기도 했다. 아이가 파양의 경험이 있어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신 분, 집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집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신 분, 길에서 태어나 혹시 길 생활을 그리워하는 건 아닌지 물어보신 분까지. 질문마다 담겨있는 각기 다른 색깔의 애정들을 마주할 때면 나의 눈도 어느새 촉촉해지곤 했다. 다른 고양이의 속마음만 보다가, 이제 우리 송이의 속마음을 카드로 뽑아보게 되다니 기분이 미묘했다.


이번에는 내가 타로카드에게 물어볼 차례였다. 송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물어봤다. 원래는 내가 카드를 뽑아도 점괘를 해석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점괘를 읽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기에는 카드 점괘가 송이가 나를 밥 주는 유능한 간호사 정도로 본다는 뜻 같았다. 지금 상태는 환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아무 걱정 없이 만족스러웠고, 그것의 계기가 나라는 정도는 송이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요양을 담당한 새로운 집사가 일을 만족스럽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읽었다.


하지만 카드를 다시 봐도 이게 맞나 아리송해서 인터넷에서 다른 타로 리더들에게도 물어봤다. 다소 정 없이 리딩한 나의 해석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해석은 무척 따뜻했다. 그중 인상 깊은 말이 있었는데, 송이도 나랑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여태까지 같이 있으면서 하악질 한번 안 하던 송이가 생각났다. 다른 고양이들은 심할 경우 싫다며 할퀴기까지 하는데, 우리 송이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를 담아, 인간인 나의 발자국에 보폭을 맞춰 살아가고 있다.




송이의 순화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만약 송이가 내년 4월이 되어서도 순화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최악의 경우, 송이가 ‘관상 냥이’라고 불리는 옷장 속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송이를 향한 입양 문의도 줄어들 것이다. 한 가지 질문을 허공에 던져보았다.


“나는 애교가 없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입양하지 않을 사람이 송이의 반려인이 되길 원하는가?”


나의 답은 명확했다. 나는 송이를 그 자체로 사랑해 줄 사람을 원한다. 사람의 기분에 맞춰 애교를 부리고, SNS에 올리기 예쁜 인형 같은 고양이를 원하는 사람만큼은 피해 가길 간절히 바란다. 송이가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의 삶 - 화가 나면 침대에 오줌을 싸고, 가끔은 건식을 먹기 싫어 습식만 먹고, 선반 위에 올라가 물건을 떨어뜨리는 - 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반려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기준에서 송이가 ‘사고’를 치더라도, 송이로 인해 버리게 된 이불보다, 송이가 먹지 않아 쓸모 없어진 사료보다, 송이로 인해 선반에서 떨어져 깨진 물건보다 송이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애교 부리는 고양이는 그런 반려인을 만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송이의 순화를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송이가 좋은 집에 입양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이가 사람과 함께 사는 삶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을 목표로 순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송이가 옷장 속에 숨어 살더라도, 잘 먹고 잘 싸는 고양이로 큰다면 그걸로 됐다. 그리고 송이를 입양할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송이가 건강하다면 그걸로 괜찮을 사람. 송이는 착하고 순한 아이니까, 꼭 그런 반려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다른 많은 반려인과 달리, 나와 송이의 이별은 축복으로 끝날 것이다. 좋은 반려인을 만나, 송이는 나와 작별을 하게 될 것이다. 송이를 임시보호하는 며칠 동안 송이의 입양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송이를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직장, 집, 생활비, 병원비와 같은 현실적인 부분을 제하더라도, 나는 죽음을 끝으로 품고 나아가는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송이의 임시보호자로 남기로 했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날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길. 우리의 마지막은 송이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될 수 있길. 그날까지 나는 온 힘을 다해 송이를 사랑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D+4 그저 스으윽 숨을 뿐이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