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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Jul 11. 2021

부모님의재산은 얼마일까?

우리 집에 다시 살게 되면서 결혼 전에는 관심 없던 생활비에 관심을 두게 됐다. 얹혀사는 입장이니 눈칫밥을 먹어 그렇기도 하지만, 뭐든 직접 해봐야 눈에 들어온다고 살림을 해 보니 자연히 살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카드 명세도 확인해 보고, 대략 부모님의 생활비도 계산해 보니 나가는 돈이 만만치가 않다. 관리비도 생각보다 많고, 경조사도 자주 있고, 슬쩍 보니 대출 고지서도 보인다. 마음이 심란하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노년을 맞이하는 것은, 경제적 능력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연히 장년인 우리가 부모님을 지켜드려야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생각만으로도 괴로워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자책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보험회사와 은행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적금이나 예치를 하면 언젠가는 찾아 쓰게 될 것 같아서 보험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교수님 한 분께서 부모님께는 쉽게 깰 수 있는 적금보다는 부모님 앞으로 된 보험을 들어 드리는 것이 효도라는 말씀이 떠올라서 연금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간호 문제로 힘들어하시던 것이 떠올라서 간병인 보험도 알아보았다. 어느 정도 금액은 예상했지만 이미 노년이 되신 부모님의 보험비는 생각보다 더 높았고, 보장 기간은 짧았다. 득보다 실이 컸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물었다. “부모님은 재산이 얼마나 있으셔?” 남편은 모른다고 한다. 그런 것도 모르냐며 타박을 했지만 나 역시 모른다.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이런 질문을 해 보긴 했다. 결혼 전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 했었다. 그때도 명확한 답은 못 들었으니 부모님 재산은 알 길이 없다. 눈에 대충 보이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대출과 그 외 기타 등등의 비용이 있으니 진정, 알 길이 없다.


부모님께서는 식구가 많은 집의 장남 장녀로 태어나셨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의 큰딸이다. 덕분에 사촌 언니 오빠보다는 이모, 고모, 삼촌이 훨씬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 매년 많은 경조사를 치렀고, 조부모님께서 나이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과정에서 삶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년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물질적 도움이 필요로 된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는 일찍 어른이 되셨다. 사회생활도 결혼도 출산도 모든 것이 빨랐다. 밤낮, 주말 없이 일하신 결과 집도 비교적 일찍 장만하셨다. 이제는 오래 활동하시는 걸 힘들어하시는데 여전히 일하시는 건 똑같다. 오히려 더 오랜 시간 일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사회생활도 결혼도 출산도 모두 늦었다. 부모님만큼 일한 것도 아닌데 몸은 더 골골한다. 김치도 담그지 못하고, 그럴듯한 가족 행사를 주최할 사회적, 경제적 능력도 부족하다. 겨우 어린아이 한 명을 고군분투하며 키우고 있을 뿐이다. 나이만 많고, 주름과 흰머리만 늘었을 뿐이지 어른은 되려다 말았다. 덜된 인간이다. 아예 덜됐으면 걱정이나 안 하고 태평하게 살 텐데 어설프게 덜 돼서 슬슬 마음이 조여 온다.

어느 날 아빠와 밥을 먹다 분위기가 괜찮아서 기회는 이때다 싶어 여쭤보았다.

 “아빠는 재산이 얼마나 있어?”

어처구니없어하신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살림해 보니까 돈이 많이 드는데 내가 도와드릴 능력이 별로 없어서 엄마 아빠 노후가 걱정돼서”.

아빠께서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나는 연금을 몇 세부터 얼마를 받고, 엄마는 얼마를 받는다. 그러니 ‘너희나 잘살아라’ 하신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엄마도 슬쩍 핸드폰으로 간병 보험 가입 내용과 납부 금액을 보여주신다.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웃음으로 지웠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는 영국 북부 광산촌에서 산다. 우연히 발레 교사에 의해 재능을 알게 되고, 런던의 로열 발레 학교를 꿈꾼다. 하지만 발레는 남성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던 아버지와 가족들은 심하게 반대한다. 더욱이 석탄 민영화 정책에 반대해 장기 파업 중이었던 시기라 발레 학교에 갈 형편도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빌리의 춤을 보게 된 아버지는 빌리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빌리의 꿈을 이뤄주기로 한다. 그래서 자신과 동료들의 신념을 꺾은 채 모욕과 질타를 받으며 광산으로 향한다. 이를 본 빌리의 형은 아버지를 저지하지만, 아버지는 울먹이며 이야기한다. "그 애에게 기회라도 주자"

부모는 자신을 버려서라도 자식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나 역시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덜 주무시고, 덜 드시고, 덜 입으시며 공부도 많이 시켜주셨다. 그런데 부모님의 마흔과 나의 마흔의 상황이 이토록 다른지 모르겠다.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언제까지일까? 이제는 부모님의 짐을 내게로 옮겨 오고 싶다.  


양가의 재산이 궁금하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노후 걱정 때문이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의 세대를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하는데 일명 낀세대라고도 한다.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책임지는 가련한 세대다. 옆에서 지켜본바 평생 정신없이 바쁜 세대다. 그 피 마르는 고됨에 일조를 한 게 나다.


내가 알고 있는 노년의 그림들을 더듬어 본다. 동화 같은 모습은 별로 그려지질 않는다. 부모님께서는 어떤 노년을 꿈꾸실까? 텃밭 이야기는 가끔 듣긴 했는데, 그게 다는 아닐 것 같다. 유년 시절을 빼곤 도시에 사신 분들이다. 또다시 무언가를 길러 만들어내는 것만을 바라시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민보단 걱정이 앞선다. 이기적인 나의, 내 삶의 걱정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고민이 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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