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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Jul 11. 2021

에필로그 _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는 하루

초등학교 때 미래 모습을 주제로 한 사생대회와 글짓기 대회는 빠질 수 없는 행사였다. 대회가 매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 내용은 거의 비슷했는데 주로 모든 것이 전자화되어 손가락이 퇴화하여 검지 하나만 남으리라는 것과, 밥 대신 알약 하나만 먹어도 살 수 있으리라는 것, 환경오염이 심해 물과 공기를 사 먹게 될 거란 어마 무시한 이야기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원고지와 스케치북에 적힌 그 무서운 시기는 2020년에서 2050년 사이, 그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2000년대는 오지 않을 미래로 보였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2021년을 살게 됐다. 아직 손가락은 본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 종일 검지를 혹사하고, 목소리로 전자 기계를 작동시키고 있으니 미래 예측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직 한 알까진 아니지만, 다이어트와 건강을 목적으로 알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있고, 물을 사 먹거나 정수기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며, 공기 캔은 아직 낯설지만, 공기청정기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니 꼬마 과학자들의 미래 예측 적중률이 가히 놀랍다. 


이렇게 대단한 의학과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역사적으로 질병으로 고통받던 시절은 재현되지 않고, 영화와 소설에서 그리는 황폐해진 도시 같은 일은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2년째 누군가의 몸에서 나와 공기 중에 떠도는 균을 두려워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이름은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균 대신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50년 가까이 변호사를 하며 1만 명이 넘는 의뢰자를 만난 '니시나카 쓰토무'는 그의 책 「운을 읽는 변호사」에서 '큰 탈 없이 지나가는 것도 운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요즘은 그 말을 절실히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잠들기 전에는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별 탈 없었음을 감사한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문 앞에서 가져오고, 영상을 통해 배우고 소통하고, 가는 곳마다 인적사항과 몸 상태를 알린다. 이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풍류를 즐기던 이름 모를 나그네는 밥 먹는 곳에서도, 차를 즐기거나 술 한잔 마시는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풍류를 즐겨본 지도 까마득한 것 같다. 멋스럽게 풍치를 느끼려면 우선, 이 마스크부터 벗어버려야 할 것이다.


힘들다. 마음껏 가족을 볼 수 없고, 그리운 사람들을 안을 수 없고, 열정만큼 일하고 즐기지 못해서 지치고 화가 난다. 그런데도 이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떨쳐내고 별 탈 없이 지나갔음을, 지나가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슬픔을 참아내기 힘들 정도의 아픔을 겪은 누군가의 마음에도 다시 온기가 전해지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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