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준 Jul 13. 2017

#2 '3개월이라는 수습기간'

의욕이 없어도 문제고 과해도 문제다

#2 '3개월이라는 수습기간'



모든 호스피스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호스피스에서는 신입 봉사자에게 3개월의 수습기간이 주어진다. 적어도 한 사람이 제 역할을 다하기까지 3개월이면 충분하다 싶었나 보다.    

  

“화준씨, 이거는 이렇게 해야 해요.”     


모두에게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중적인 관심이 쏟아졌던 첫 출근(?)후에 내게는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선배 봉사자가 생겼다. 모든 선배 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막히는 부분을 알려줬지만, 신입 봉사자를 집중적으로 전담하는 선배를 따로 배정, 모르는 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물어보라는 취지에서 멘토/멘티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꽤나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군대 선임과 후임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많아 크게 어색한 건 없었다. (살다 보면 의외로 군대 경험이 유익하다는 걸 느낀다.) 

그러나 선배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려 한들 신입에게 문제가 벌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일단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을뿐더러 아무리 열심히 한들 기존집단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진통이 생기기 법이었다. 특히 신입의 과한 의욕은 크든 작든 때때로 사고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1 발 마사지     


선배 봉사자 두 분은 환자의 발 마사지를 하면서 동시에 뒤에서 보고 있는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화준씨, 발 마사지를 할 때는 이 부분을 지그시 눌러줘야 해요.”

“환자의 발은 일반인 발보다 여러모로 조심해야 해서 그만큼 힘 조절이 중요해요.”     


선배 두 분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면 발마사지가 주는 신기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곤 한다.      


‘오, 이거는 나도 조금만 조심하면 잘 하겠는데?’     


이런 의욕어린 생각이 채 식기도 전에 내게 발 마사지 기회가 찾아왔다. 신은 내 편이었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마음이 존재한다면 이런 거겠지.’ 나는 비장어린 눈빛으로 환자 앞에 섰다. 그리곤 알려준 대로. 또한 바로 맞은편에서 함께 발을 주무르는 선배 봉사자의 손짓을 보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자신감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픕니다.’     


사람의 몸짓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말하는 게 힘들지만 분명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환자는 나에게 ‘아프다’는 분명한 의사표현을 전했다. 나는 그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이해했기에, 최대한 힘을 빼고 조심스럽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과한 의욕과 환자에 대한 인식부족은 문제해결을 방해했다. 그러다 보니 유독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혈관은 내게 “이딴 식으로 할 거면 하지 마!”라고 내뱉었고 나는 죄송한 마음을 담아 혈관을 쓰다듬기에 바빴다.

이런 나와 환자의 대화를 몰랐던 선배 봉사자는 환자의 기운찬 혈관을 보며 “환자분께서 기력이 좋으시네요!”라는 혼잣말을 하시는데, 수습이 끝난 지금까지도 그 말은 잊을 수가 없다.      


(여담이지만, 봉사가 끝난 직후 환자분께 “처음이라 서툰 나머지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말했고, 환자분은 감사하게도 내 손을 잡아주며 위로를 해주셨다. 그분의 넓은 배려에 이제는 그때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발 마사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환자분께는 지금도 감사할 따름이다.)         



      

#2 욕실 청소     


지금이야 목욕 봉사를 빈번하게 하지만, 수습기간일 때는 직접 해보는 건 한 번밖에 없었고, 대부분은 목욕이 끝난 후 뒷정리를 하곤 했다. 직접적으로 목욕을 해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원래 기초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게 훗날 막힘이 없음을 알기에 최선을 다했다. 

어떤 청소든 하다 보면 본인이 선호하는 도구가 있기 마련이다. 누구는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하는 걸 좋아하고 누구는 호스를 손에 쥐고 여기저기 물 뿌리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엇보다 밀대를 좋아했다. 바닥에 흥건히 있는 물을 과감하게 밀대로 밀어대며 배수구로 넣을 때 밀려오는 묘한 즐거움. 수습기간 내내 그 즐거움에 취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깨끗해지는 바닥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그 누구라도 밀대의 즐거움에 취하게 되리라. 그러나 문제는 밀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제대로 주변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에 있었다.     


‘좋아, 역시 밀대야! 이 맛에 청소하는 거지!’     


체중을 실어 밀대를 움직이던 나는 바닥의 물을 가득 모아 배수구로 모으는 것에 심취했다. 힘을 주고, 또 주고, 다시 또 주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화준씨, 밀대는 이제 그만..” 

“촤악!”     


나는 온 체중을 다 실은 채 바닥에 있던 물을 끌어 모으는 중 본능적으로 말소리가 들린 곳으로 손을 움직였다. 선배 봉사자는 말을 잇다 말고 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 역시 그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순간 정적. 우리 둘 다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과욕이 부른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여기까지만 적기로 하자. 나의 자존감은 소중하니까. 그저 수습기간을 거치다 보니 왜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수습기간이라 불렀는지 이해가 되었다. 3개월은 신입 봉사자가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게 빈번했고, 그걸 수습하고 보완하기 바쁜 시간이다. 충분히 수습기간이라 부를 만하다.     







당신에게 필요한 마지막 수업


매거진의 이전글 #1 여기는 호스피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